[시네마 세러피]‘슈퍼스타 감사용’ 을 보고

  • 입력 2004년 10월 7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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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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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중인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감사용’)은 감동적이다. 1982년 당시 프로야구에 인생의 절반가량을 헌납했던 나는 옛 선수들의 귀환(?)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했다.

영화에서는 실제와 다르게 OB 베어스의 박철순 선수가 20연승을 거둬내는 경기에서 삼미 슈퍼스타즈 감사용 선수와 맞붙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이 시합에서 다소 의아했던 부분은 감사용이 어깨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완투를 고집하는 장면이다.

야구는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닌데, 완투 경험이 없는 투수를 마운드에 세운 1점차 경기에서 마무리투수를 쓰지 않다니. 선발투수의 만용이자 감독의 직무유기다. 이 지점에서 나는 좀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과연 우리는 단지 그가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것일까?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프로페셔널한 삶의 태도를 강요하는 시대의 허상을 이야기했다면, 영화 ‘감사용’은 ‘어떤 위치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라고 말한다.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이 선발 등판하는 경기에는 옛 직장 동료들뿐 아니라 그를 눈물로 응원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대수롭지 않은 로맨스를 나눴던 인천구장 매표소 아가씨까지 총출동해 그를 주시한다. 그는 그야말로 마운드에 세워진 선발투수다. 그로 하여금 완투를 고집하게 했던 것은 그의 꿈보다는 두 어깨에 짊어진 역할의 무게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이 영화는 반(反)영웅의 탈을 쓴 영웅담에 다름 아니며, 우리가 본 것은 그 영웅의 비장한 실패담이다.

사실 감사용의 기막힌 기록을 낳은 진짜 주인공은 준비도 없이 프로야구에 뛰어든 기업 삼미였고, 박철순의 대기록을 낳은 것은 한 명의 스타 투수가 무리한 선발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빈약한 선수층이었다. 시스템을 지탱해야 하는 하드웨어의 원칙, 즉 큰아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격인 둘째아들이 온전히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감사용과 박철순이라는, 양 극단에 선 선수들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둘 다 안쓰러워 보인다. 이 영화는 누가 이겼고 졌느냐 보다 박철순과 감사용을 번갈아 같은 마운드에 놓는 것에 그 본질을 두고 있다. ‘슈퍼스타 감사용’이 아니라 ‘불사조 박철순’이라는 제목을 붙여도 달라질 것이 없다.

우리는 ‘감사용’을 보며, 꿈을 가진 인생의 풍족함보다는 각자가 짊어진 역할의 무게, 늘 역부족인 삶, 엉겁결에 뛰어들게 된 프로세계의 냉혹함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그리고 고개를 떨어뜨린 패전투수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패배자의 페이소스를 그에게 지운 채 조금 편안해진다.

그런데 살아갈수록 정작 꿈을 꾸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적당한 때에 마운드에서 내려와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도 영웅이 될 필요가 없는 것, 내 안에 있는 영웅의 환상을 죽이고 그 무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꿈이 꿈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철저히 개인의 것이어야 한다. 그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지난 22년간 조금씩 진행되어 왔다고 믿는 것은 내 생각일 뿐일까?

서태지도 ‘울트라맨이야’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솔직한 해답을 갖자/영웅이란 존재는 더는 없어/이미 죽은 지 오래 무척 오래.”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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