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여성앵커 선발, 실력보다 얼굴 더 따진다”

  • 입력 2004년 9월 29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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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앵커를 선발할 때 전문성과 상관없이 나이나 외모, 결혼 여부와 같은 요소가 작용한다.” (30대 기혼 여성 앵커)

“(간부진은) 젊고 꽃다운 여자만 쓰려고 한다.” (40대 기혼 여성 전 앵커)

여성 앵커는 여러 설문조사에서 배우자 후보 1위에 꼽힐 만큼 선망의 대상. 그러나 실제로는 남성 앵커의 보조에 불과하며 외모 위주로 선발된다고 방송사의 전현직 여성 앵커들이 털어놓았다.

김훈순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와 이규원 KBS 아나운서실 차장은 최근 논문 ‘TV뉴스 여성 앵커들의 직업인식과 방송사 조직의 성차별적 관행’에서 지상파 3사와 YTN의 전현직 여성 앵커 13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논문은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이 발행하는 ‘프로그램/텍스트’ 10호에 게재됐다.


여성 앵커들이 방송사 내부의 성차별적 관행으로 인해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진은 지상파 3사의 메인 뉴스를 진행하는 KBS 정세진, MBC 김주하, SBS 김소원 앵커(왼쪽부터). -동아일보 자료사진

여성 앵커들은 선발과정의 불투명성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처음에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아침 종합뉴스 생활정보 코너를 진행했다. 하지만 7개월 뒤 주말 9시 뉴스로 이동하고 2년 뒤 평일 9시 뉴스로 자리를 옮길 때는 오디션이 없었다. 윗사람들과 평기자들의 평가로 선발됐다고 들었다.” (30대 미혼 여성 앵커)

여성 앵커들은 남성 앵커는 경력과 연륜을 중시하는 데 비해 여성은 호감 가는 외모가 주요 선발기준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한 30대 미혼 여성 앵커는 이 조사에서 “젊고 예쁜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주름과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젊은 여성 앵커들은 함께 진행하는 부장급 기자 출신의 남성 앵커에 비해 뉴스 진행의 보조역할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이와 직급으로 형성된 수직적 상하관계 때문에 뉴스의 핵심 진행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남녀 앵커들의 평균 연령차이는 MBC 13.2세, KBS 10.5세, SBS 6.8세. MBC 평일 ‘뉴스데스크’는 22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여성 앵커들은 “20대 중반에 시작해 30대 초반이 되면 그만둬야할 정도로 수명이 짧다”며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30대에 시작해 40대에 꽃 피워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들은 또 “젊은 나이에 앵커로 발탁된 데다 취재경험이 거의 없어 뉴스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나 내용 전달에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에서 여성 앵커 6명 중 5명이 아나운서이고(MBC 김주하 앵커만 기자) 남성 앵커는 6명 전원이 기자다.

김 교수는 “여성 앵커가 등장한지 30년이 넘고 숫자도 크게 늘었지만 남녀 앵커의 성차별적 관행은 여전하다”며 “겉으론 화려해보이지만 결혼이나 나이 등으로 퇴출되는 시스템에서는 여성 앵커의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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