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젠 미래를 말하자]<上>비전이 흥망을 결정한다

  • 입력 2004년 8월 11일 18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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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서울에 있는 문화관광부, 주한 미국대사관 건물과 너무 비슷한데 어떤 사연이 있나요?”

그때마다 ADB 관계자들은 “서울에 있는 두 건물은 모두 수십년 전 필리핀 엔지니어들에 의해 지어진 건물”이라고 소개한다. 실제로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살았고 한국보다는 ‘훨씬 앞서 가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변변한 산업기반이 없어 외국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송금해 오는 돈에 의존하는 국가로 추락했다.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미래 비전’=2002년 필리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65달러. 1980년 671달러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때 ‘오일달러’를 무기로 위세를 떨쳤던 중동 국가들도 추락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를 보면 1980년의 경우 1인당 GDP 기준으로 세계 10위권 국가 중에 중동 국가가 4개나 포함됐다. 1, 2, 3위가 모두 중동 국가였다.

그러나 22년 뒤인 2002년 결과는 영 딴판이다. 10위권에 속한 나라는 카타르가 유일하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1인당 GDP가 같은 기간 1만5319달러에서 8544달러로 추락했다.

반면 싱가포르와 아일랜드는 대조적이다. 제대로 된 자원이 없는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1980년의 4904달러에서 2002년에는 2만1162달러로 급상승하면서 ‘일류국가’로 진입했다.

유럽의 빈국이었던 아일랜드도 1950년대 말 숀 레마스가 집권한 뒤 ‘경제발전 구상’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제의 적’ 영국과 화해하고 외자유치에 힘썼다. 이런 노력들에 힘입어 아일랜드의 1인당 GDP는 3만1333달러(2002년 기준)로 영국을 추월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의 흥망성쇠’를 가른 핵심 변수로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느냐를 꼽는다.

필리핀은 장기 집권을 하면서 부패했던 마르코스, 현상 유지에 급급한 코라손,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 에스트라다 정권을 거치면서 아시아의 모범생에서 열등생으로 전락했다. 반면 싱가포르는 리콴유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일약 일등국가로 발돋움했다.

최근 ‘10년 후 한국’이란 베스트셀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위기를 경고한 공병호(孔柄淏·경제학) 박사는 “실패한 국가의 주요 특징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키우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사고방식이 강하다는 점”이라며 “가령 중동의 시대정신이 계속 과거지향적이고 내부지향적이며 ‘미 제국주의 타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중동의 재기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업도 미래를 준비해야 살아남는다=미국의 미디어그룹 다우존스사는 미국의 초우량기업들로 다우존스지수 종목을 선정한다.

1896년 처음 선정됐던 ‘1세대’ 종목 12개 중에서 현재까지 다우존스지수 종목(현재는 30개 종목으로 구성)에 남아 있는 회사는 제너럴일렉트릭(GE) 한 개밖에 없다. 나머지는 탈락했다. 아예 망해 사라진 회사도 많다. 미래를 읽지 못하는 회사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기업 생태계’의 철칙을 보여 준다.

재봉틀의 대명사인 싱어는 한때 뉴욕에 47층짜리 사옥을 건설할 정도로 일류회사였다. 그러나 기성복의 등장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1999년 법원에 파산신청을 해 150년의 역사를 마감해야 했다.

▽가수 보아의 성공이 시사하는 것=가수 출신 사업가로 ‘SM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인 이수만씨.

그는 1998년 가수 지망생인 오빠의 오디션에 따라 나왔던 보아(당시 초등학교 5학년)를 보자 바로 그의 ‘미래가치’를 알아채고 그 자리에서 발탁했다. 이후 보아는 2년 동안 춤과 노래를 배우고 일본에서는 6개월 동안 현지 아나운서에게서 일본어 개인교습을 받았다. 이후 보아는 일본에서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등 ‘1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任珍模)씨는 “엔터테인먼트산업은 특성상 시대의 흐름 속에서 미래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래 비전의 중요성은 개인과 기업은 물론 국가경영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광복후 반세기 남북한 변화▼

‘4770억달러와 170억달러.’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말 기준 남북한의 국민총소득(GNI)이다.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의 약 24배다. 국민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GNI도 남한(1만13달러)이 북한(762달러)의 13.1배에 이른다.

하지만 원래 남한이 북한보다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오히려 북한이 남한을 앞섰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유엔 등 국제기구에 따르면 ‘8·15광복’ 이후 상당기간 GNI나 1인당 GNI가 남한보다 훨씬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패망 이전 중국 침략을 위해 지하자원이 풍부한 한반도 북부 지역에 각종 공장이나 발전 시설을 집중시켰다. 이 때문에 북한은 변변한 산업시설이 거의 없었던 남한보다 초기 경제 개발 여건이 훨씬 유리했다.

실제로 북한은 6·25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54년에서 1960년까지 매년 20∼30%씩 경제 성장을 했다. 1960년대 들어서도 북한은 매년 10%대 정도의 성장률을 보여 뒤늦게 경제개발 경쟁에 뛰어든 남한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력은 1970년대 중반경 역전된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내세워 자급자족형 계획경제 체제에 치중하면서 국제경제체제에서 고립됐기 때문. 국제교류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보다 대남 적화(赤化)나 권력세습 같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민들을 외부와 단절시키는 비효율성을 선택하면서 추락해갔다.

반면 남한은 외국 자본을 적극 끌어들이고 기업가 정신을 부추기는 등 활발한 개방 정책을 꾸준히 펼쳐 북한에 뒤졌던 경제 분야에서 대역전을 했다. 또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민주화 등 다른 분야에서도 북한을 앞질렀다. 체제의 선택과 리더십의 방향이 명암을 결정적으로 가른 것이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 등 군사정권 지도자들이 취약한 정통성 확보를 위해 경제 개발 드라이브를 걸었다며 혹평하는 시각도 있다. 적잖은 희생과 부작용이 따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면서 ‘경제 성장’이라는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 한국사회를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한 공로를 부정하기는 힘들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일동(高日東) 북한경제팀장은 “남한은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사회 주도세력이 군(軍)→관료→기업으로 바뀌는 등 미래지향적인 추세가 있었던 반면, 북한은 ‘우상화와 세습’이라는 과거 지향적인 교조주의에 빠져 운명이 엇갈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세계13國 100년 경제성적▼

“잘사는 나라들이 계속해서 부자 나라로 남아 있거나, 가난한 나라들이 영원히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그레고리 맨큐 미국 대통령경제자문회의 의장이 약 100년 동안의 세계 13개국 ‘경제 성적표’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이 같은 분석 결과는 그가 집필한 ‘맨큐의 경제학’에 소개됐다.

실제로 한때 잘나가던 ‘경제 우등생’ 국가가 평범한 국가로 전락하거나 ‘별 볼일 없는’ 국가가 탄탄한 미래 전략을 통해 ‘경제 선진국’으로 도약한 사례가 적지 않다.

1870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꼽히던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826달러로 당시 미국의 1인당 GDP보다 20% 정도 높았다. 또 캐나다의 1인당 GDP의 2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후 영국은 경제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한 끝에 1997년에는 1인당 GDP가 미국과 캐나다보다 뒤처지는 수모를 당했다.

일본은 영국과 정반대의 사례. 1890년 일본의 1인당 GDP는 1196달러로 멕시코보다 약간 높고 아르헨티나에 비하면 훨씬 낮았다. 그러나 산업화에 성공하면서 1890∼1997년까지 연 평균 2.82% 성장률을 보이며 미국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전략 부재로 오랜 기간 세계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국가도 있다. 1900년 495달러이던 방글라데시의 1인당 GDP는 1997년 1050달러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1890년 일본보다 낮은 수치. 연 평균 0.78%의 ‘거북성장’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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