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학 ‘설악의 사계’ ‘소장 골동품’ 展

  • 입력 2004년 6월 23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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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골동품전에 출품된 조선시대 목가구 4층 책장. 단아한 멋과 품격이 돋보인다.-사진제공 갤러리현대
김종학 골동품전에 출품된 조선시대 목가구 4층 책장. 단아한 멋과 품격이 돋보인다.-사진제공 갤러리현대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씨의 개인전(‘설악의 사계’)이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7월4일까지)에서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격정과 환희를 가득 담은 개인전도 볼 만하지만 전시장 옆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김종학 소장 골동품 전’의 옛 민예품과 목기도 그의 심미안을 잘 보여 주는 걸작들이다. 작가와 30년 지기인 서울대 김형국 교수가 두 전시를 함께 보고 감상을 썼다.》

사람은 본디 궁금증이 많다. 좋은 창작을 만나면 작가에게 창작의 영감을 자극한 배경도 궁금하다. 창작품에서 만나는 흥겨움이 클수록 궁금증은 더해지지만, 누설하면 안 되는 비법이라 여겨져 작가가 쉬이 털어놓지 않을 것이라 관객들은 지레 짐작하고 만다. 그런 점에서 서양화가 김종학의 ‘설악산 시대’ 사반세기를 기념하는 회고전과 그의 미적 감수성에 영향을 미친 애장품 전시가 함께 열린 것은 우리 화랑 전시사(史)에서 전례 없는 일이다. 화가의 붓 자국과 함께 이를 낳았던 영감의 물적 토대를 함께 만날 수 있는, 미술 감상과 미술교육의 겹 잔칫상을 펼쳐 놓은 것이다.

‘설악의 사계’라는 회고전 이름처럼 화가는 설악에서 만난 들꽃을 자유분방한 필력을 빌려 현란한 색채로 환생시켜 왔다. 그곳 어느 모퉁이에서 자라는 들꽃을 화면에 담았음이 분명하지만, 실제와는 상관없이 화제(畵題)의 크고 작음이나 앞뒤 배치가 오로지 화가의 감흥에 따라 춤을 춘다. 감흥이 필시 자연사랑, 인간사랑에서 연유한 것임은 그의 화제가 수저집, 베갯모 같은 민예품을 장식했던 모란꽃, 연꽃 등 복을 빌던 상징을 원용했음이 잘 말해준다. 그런데 감흥만 춤추면 그림이 자못 어수선할 터이지만 목기가 갖는 간결과 절제의 미학이 더해져 균제(均齊)를 잃지 않는다.

신변용품을 수놓던 화려함을 화풍으로 발전시키기까지 김종학은 고심이 적잖았지 싶다. 현란한 색채의 구사는 우리 취향이 아닐 것이라고 오래 세뇌 받았기 때문이다. 망국 끝에 패배주의가 이 땅을 뒤덮던 일제강점기 때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일본 안목가가 동북아 삼국의 예술취향이 일본은 색채, 중국은 형태, 조선은 선(線)이 특장(特長)이라고 말해줌에 감복한 나머지, 한동안 식자들은 우리 미학이 색채와는 인연이 멀다고 확대해석했다. 식민지 땅을 일본 중국과 대비해준 것이 황송했고, 스스로 살펴봐도 백의민족인지라 타고나기를 색채와는 인연이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만큼 어느 민족 못지않게 우리도 색채감이 뛰어났다는 발상법은 만각(晩覺)이었다. 프리즘에서 볼 수 있듯이, 백의민족의 흰색에서 색동저고리 원색이 태어나는 원리를 전통 민예품에서 통감하면서 김종학은 자기학습용 수집벽(蒐集癖)에 푹 빠지고 만다.

좋은 수집벽은 수집가의 개성이 느껴질 정도라 하는데, 치열한 열정에서 김종학의 수집벽은 문방 백자를 수집한 의사 박병래(朴秉來)나 조선백자를 많이 모은 일본 사업가 아타카 에이이치(安宅英一)에 버금간다. 정초가 되면 단골 골동상을 유명 음식점에 초대할 정도로 정성을 들이던 아타카처럼, 화가는 앉는 자리마다 우리 골동상의 눈썰미 자랑이다.

좋은 수집활동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빼어난 민예품 수집에다 이를 자양분으로 삼아 설악의 자연을 좋은 미술로 승화시켰으니, 김종학의 경지는 한마디로 이 시대에 성공한 양수겸장(兩手兼將)의 예술이라 하겠다.

김형국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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