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민의 야한여자-당찬여자]소설가 박완서

  • 입력 2004년 5월 27일 2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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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는 꽃띠다.

어느새 칠십을 훌쩍 넘어 버렸지만, 언제나 봄바람 속의 복숭아꽃 냄새가 난다.

개성 출신 서울내기 박완서는 재미와 맛이 있는 소설을 쓰는 뛰어난 이야기꾼이다. 상상을 틀어버리는 이야기 전개는 언제나 그녀답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 속에는 쉬운 삶을 보장받는 등장인물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녀는 좋아하는 것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정말 싫어한다. 싫은데 좋다고 예의상 내뱉는 헛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가족에 대하여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녀에게 가족은 기쁨과 슬픔, 풍요와 빈곤으로 장식된 다람쥐 쳇바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그 쳇바퀴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한다. 가족에 대한 애증은 그녀의 창조적 힘이다. 집은 사랑과 질투, 탄생과 죽음, 결혼과 이혼과 같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풍부한 사건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사람들의 일상의 일들을 이야기 속에 긴장감으로 담아낸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내뱉는 어휘가 소설 속에 모두 들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쓰는 것은 개인의 기술에 속하는 일이다. 그녀는 글을 통해서 위로하는 기술을 가졌다. 자신이 수줍고, 소극적인 사람이라서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까. 박완서는 소설을 통해서 자신도 위로받고 남도 위로한다.

박완서는 늦바람의 여왕이다. 마흔이 되어서야 소설가가 된 전력이 그러하듯이 한번 불이 붙으면 좀처럼 끌 수 없는 기름 항아리 같다. 처녀자리인 그녀는 영화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즐릿처럼 남편을 버리고 대서양에서 만난 남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사랑할 수 있는 여자다. 사회적인 비판에 고뇌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의 행동방향을 수정하지는 않는다. 처녀의 수줍음 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의지와 열정을 숨기고 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한 글쓰기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사랑하기에 삶이 아름답다.

나는 그녀의 본질이 땅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다. 그녀는 자연의 피조물에 감사한다. 꽃과 나무는 분노를 삭이는 싱그러운 존재다.

그녀는 예쁜 것을 좋아한다. 가슴속에는 소녀가 풀밭에서 만드는 꽃반지의 감성이 가득하다. 자신이 믿는 삶을 위해 나눌 줄 안다. 지금까지 가족에 대한 조용한 용기와 깊은 책임감은 대가족을 응집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 아이스크림보다는 식혜나 수정과의 단맛처럼 질리지 않는 사랑을 주려했던 노력이 역력하다.

전생의 업처럼 피할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집착은 엄격함과 강요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은 발달된 지성과 예술 감각으로 만들어진 분별력으로 선과 악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으로 표출된다.

하지만 박완서는 사랑스러운 여자다. 겸손한 매너와 부드럽고 투명한 눈이 그렇다. 복숭아꽃을 닮은 눈은 녹슬지 않은 섬세한 성적 매력이 번뜩인다. 지혜로운 위트와 유머가 느껴진다.

그녀는 불타는 육체적 사랑보다는 신중한 연애를 좋아할 것 같다. 고요하고 기다릴 줄 아는 정신적 열정에서 더욱더 강한 묘미를 느낄 것 같다. 아니라고 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박완서는 더디 늙는 방법을 아는 여자다.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포기하는 순간 어느덧 늙어 버린다. 그녀는 아직도 꿈꾸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의식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꿈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안다.

박완서는 꽃띠 여자다. 그녀의 향기를 느끼며 나는 낙타에 그녀를 태워주고 싶다. 태양을 즐기며 천천히 그녀의 늦바람에 동참하고 싶다. 그리고 아름답고 죄 많은 여자, 팜 파탈의 이야기를 밤새워 나누고 싶다.

보석디자이너 패션 칼럼니스트 button@keb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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