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튤립축제 준비

  • 입력 2004년 4월 22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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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축제는 얼핏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밤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오전 7∼9시경이 자장 보기에 좋다. 이종승 기자urisesang@donga.com
꽃 축제는 얼핏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밤에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오전 7∼9시경이 자장 보기에 좋다. 이종승 기자urisesang@donga.com
《K, 어제 새벽 내내 땅을 팠단다. 튤립을 심었지. 얼마나 허리가 아프던지. 그냥 심으면 피는 것이 꽃인 줄 알았는데 참 많은 사람들이 일년 내내 가슴 졸이고 잠도 못자며 고생을 하더구나. 작은 꽃을 가꾸는 마음을 체험해 보고 싶어 시작한 것치고는 참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단다. 그들은 마음 속에 뭘 심었기에 꽃 한 송이에 그렇게 땀을 흘릴까. 내가 심은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 꽃 한송이 피우기 위해

새벽마다 경기 용인시까지 내려오는 일은 쉽지 않아. 오전 5시부터 일이 시작되거든.

이 꽃들은 지금 튤립 축제가 한창인 에버랜드로 가는 것이란다.

오자마자 튤립이 심겨있는 온실 10개 동에 물을 줘야해. 온실 안에 아직 피지 않은 30여만개의 아기튤립들이 잠을 자고 있거든. 나머지 70여만개는 전시돼 있거나 전시를 마치고 사라졌지.

물 주기가 끝나면 돌아다니며 자라는 상태를 일일이 점검해. 병충해가 있거나 싹이 안 트거나 다른 친구들에 비해 너무 빨리 자라거나 늦게 자라는 것은 골라내지.

여기서는 수십만개나 되니까 그럴 수 없지만 집에서 튤립을 키울 때는 물 줄 때 주의할 점이 있어. 꽃이 핀 후에는 꽃술에 물이 닿지 않게 줘야 한다는 것이지.

왜 그러냐고 물으니까 옆에 있는 일하는 아줌마 대답이 걸작이야.

“튤립은 꽃 안의 씨방에 꽃술이 닿으면서 번식을 하는 기라. 한창 사랑하고 있는데 갑자기 물 뿌리면 어떠카노.”

온실 온도도 수시로 점검해야 해. 15∼20도 정도가 적정한데 같은 온실 안에서도 곳곳이 다르거든. 나는 매번 온도계를 봐야 알 수 있는데 다른 직원들은 피부로 그걸 느끼더군.

튤립은 밥그릇보다 조금 큰 플라스틱 화분 안에서 재배되는데 화분 하나에 구근(튤립의 알뿌리) 하나씩만 집어넣어. 온실 안에는 이제 막 싹이 나온 것부터 봉오리가 맺힌 것까지 몇 단계의 튤립들이 자라고 있단다.

봉오리까지 달린 것들은 2, 3일 내로 축제장으로 가는 것들이야. 약 7∼15일간 꽃이 피기 때문에 시들거나 안 피는 것은 수시로 갈아주거든. 어제는 3000개를 갈아 심었어.

호미로 플라스틱 화분 크기 만큼 땅을 파고 화분에서 튤립만 빼서 심으면 된다기에 시키는 대로 몇 십 개를 심었다가 다 다시 심었어. 일렬로 심으면 안 된다나. 골이 보이기 때문이지. 서로 엇갈리게 심은 뒤 흙을 누르지 않는 것이 요령이야. 다진다고 흙을 누르면 뿌리가 흙에 눌려서 뻗지 못한대.

○ 온실의 꽃은 왜 약할까

축제는 3월 중순 시작됐지만 준비는 작년 5월부터 해왔어. 먼저 화단 도면을 설계한 후 색상을 맞춰 네덜란드에 100만개의 구근을 주문하지. 10월 경 구근이 오면 일일이 1개씩 상태를 점검하고 소독을 하고 약 50만개는 이때 직접 전시될 장소에 심어. 얘들이 자연 상태에서 정상적인 시기에 피는 튤립들이야. 나머지 50만개는 축제가 끝나는 이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피도록 인위적으로 개화를 조절해.

튤립은 약 8000종이 있는데 실제로 재배되는 것은 100∼150종 정도래. 여기서는 색상별로 20여 가지를 재배하고 있어. 그중에서 가장 맘에 들어 ‘찜’한 것이 ‘메리위도’야. 밝은 적색에 하얀 테두리가 있는 튤립이지. 상태가 제일 좋은 하나를 몰래 특별 관리 했는데 다음날 나와 보니 잎에 갈색 반점이 생겼어.

갈색점무늬병이라고 이른 봄비가 많이 올 때나 촉성 재배를 할 때 발생한다더군.

내 몸에 반점이 생겼어도 그렇게 속이 쓰리지는 않았을 거야.

온실 안 꽃들은 자연산보다 몸이 많이 약해. 그래서 갑자기 온도가 뚝 떨어지는 경우가 가장 신경 써서 주의해야 할 때지.

한창 피었다가도 이렇게 되면 하루 만에 꽃이 시들거든.

온도 조절 트레이닝을 시키기는 하지만 트레드밀 백날 뛰어봐야 직접 운동장 도는 것만 하겠어.

꽃 이야기만 했는데 축제에 온 사람들도 각양각색이야. 밤에 한 바퀴 순찰을 도는데 한 남자가 묻더군.

“아저씨! 여기 좀 조용한데 없어요?”

아니 이 사람이. 김지애의 ‘몰래한 사랑’인가. 무화과 그늘에 숨어 앉아 사랑을 하게.

취재를 위해 함께 온 사진기자 선배는 어젯밤 연인들을 위해 디지털 카메라 셔터를 몇 번이고 눌러줬어. 카메라 메고 있으니까 유원지에서 보이는 사진사인 줄 알았나봐.

○ 꽃은 시들어도…

꽃을 가꾸다 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아.

튤립은 모양은 참 예쁜데 향기가 없어. 그래서 벌이나 나비가 오지 않아. 정말 그런가하고 온실 안과 전시장을 돌아다녔는데 진짜 없더군.

정말 ‘예쁜 게 다’ 가 아니야.

온도 차 때문에 먼저 피는 꽃도 있지만 몸이 약한 꽃들이 빨리 꽃을 피운대. 자기 몸이 약해서 오래 못 살 줄 아니까 빨리 자손을 남기려고 하는 거지. 눈물겹지 않니.

K야. 꽃잎이 진다는 것은 다음 생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란다.

비록 사람들은 꽃잎이 진 것만 보고 “죽었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희망’이 자라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희망은… 바람이 분다고, 폭우가 쏟아진다고 지는 것이 아니란다.

씨앗이 겨우내 흙을 뚫고 싹을 틔우 듯 너의 꿈도 반드시 피어 날거야.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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