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雲甫는 잊어라…김기창화백 부인 故박래현展

  • 입력 2004년 3월 28일 17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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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향 박래현 작 `작품10`(종이에 채색. 169.5×136㎝, 1965년). 마치 현미경으로 본 세포를 연상시키는 이 이미지들은 작가가 추상을 통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우향 추상화의 대표작이다. 사진제공 가나아트·포럼페이스
우향 박래현 작 `작품10`(종이에 채색. 169.5×136㎝, 1965년). 마치 현미경으로 본 세포를 연상시키는 이 이미지들은 작가가 추상을 통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우향 추상화의 대표작이다. 사진제공 가나아트·포럼페이스
“결혼하려면 조건이 있어요. 살다 헤어져도 친구로 만나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예술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해요.”

“또 없나?” “서로 인격과 예술을 존중할 것.”

“시시해 그런 건.”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1913∼2001)은 우향 박래현(雨鄕·朴崍賢·1920∼1976)이 자신의 이 마지막 말에 “까르르 웃으면서 프러포즈를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우향은 스물일곱, 운보는 서른넷이었다.

우향의 결혼은 예술을 위한 결합의 성격이 강했다. 지주의 딸이자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 온 엘리트였던 우향은 가난하고 학벌도 없는데다 귀까지 먹은 운보와 ‘예술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조건 때문에 결혼을 결심한다.

박래현 작 `나녀`(종이에 채색. 202×99.5㎝, 1960년). 작가의 초기 구상작품으로 대담한 직선이 강조된 기하학적 형태 분석과 단순한 색채 속에서도 섬세함과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우향은 남편의 예술적 성장과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친 후원자인 동시에 자극원이면서 네 아이의 교육과 성장을 전담한 어머니였다. 그러면서도 여성의 자아실현이라는 끈을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었던 선구적 여성 화가이기도 했다. 그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부여되어온 편견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 직립하고자 했다.

오랜만에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전시가 4월2일∼5월2일 서울 평창동에 새로 개관한 가나아트ㆍ포럼스페이스에서 열린다. 1950년대∼70년대 대표작 회화 20여점과 타피스트리, 판화, 드로잉, 삽화 등 총 70여점이 나온다.

전시장을 둘러보면 “우향의 개성은 운보라는 거목에 가려 상대적으로 평가 절하된 측면이 있다”(김현숙·미술평론가)는 말이 실감난다.

우향의 작품세계는 한 마디로 끊임없는 변신과 포용이었다. 그는 단순히 선구적 여류화가가 아니라 “동 서양의 개념을 넘어 전통 채색화부터 서구의 모더니즘 회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조형적 자유를 만끽했던 근대화가”(김미경·미술평론가)였다.

우향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시기로 구별된다. 각 시대별 작품들은 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고 달라 우향이 집요하리만치 ‘창조 욕구’로 가득한 생을 보냈음을 짐작케 한다.

우선 전시장 입구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들’(1956년), ‘풍요’(1960년), ‘나녀(裸女)’ (1960년) 등 초기 구상 작업은 피카소나 브라크의 입체파 그림을 연상시킨다. 대담한 직선이 강조된 기하학적 형태 분석과 단순한 색채 속에서도 섬세함과 여성스러움이 묻어난다.

이어 작가는 1960년대 중 후반 추상작업으로 돌변하는데 이 때 그린 ‘정물’ ‘작품’ 등은 한지가 가진 ‘번짐의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들이다. 동양화와 서양화가 절묘하게 결합된 온화하면서도 당당한 추상화면들이다. 특히 60년대 후반에 집중되었던 길다란 띠 작업들은 작가가 ‘엽전 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대표작들이다. 현미경으로 본 세포를 연상시키는 이 이미지들은 작가가 추상을 통해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단계로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뉴욕 판화공방에서 작업하는 박래현.

중견작가로 위상이 굳어갈 즈음인 69년 우향은 세속적인 편안함에 안주하지 않고 돌연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평면 작업을 모두 버리고 판화와 에칭, 타피스트리 작업에 몰두한다. 특히 털실이나 장식용 직물에 엽전이나 둥근 커튼 고리 같은 물체를 박은 타피스트리, 섬세하고 화려한 판화작품 등은 한국적 모더니스트의 화려한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향은 57세에 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다. 요절은 아니었지만 그의 죽음은 우향이 바야흐로 작가로서 단단하게 큰 몫 하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그의 따뜻한 인간애와 내면의 깊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당시 시인 모윤숙은 “우향의 죽음은 아내, 어머니, 예술가라는 삼중의 삶이 부른 과로 탓이었다”고 회상했다. 02-720-102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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