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넷 키우기]<11·끝>"자퇴하겠다" 떼쓰는 아이

  • 입력 2004년 2월 22일 17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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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아이들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첫째의 고등학교 졸업을 시작으로 둘째의 중학교 졸업, 넷째의 유치원 졸업이 줄줄이 이어졌다. 이제 3월이면 입학식에 참석하느라 부산해지리라.

우리 집은 올해부터 네 아이가 초등학교서부터 대학교까지 한 명씩 고루 다니게 된다. 이쯤 되면 출산율 저하로 고심하고 있는 정부가 우리에게 표창장이라도 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남편에게 너스레를 떨어 본다.

큰아이 졸업식 때 학부모 대표로 단상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느낌이 남다르다. ‘저 아이들을 저만큼 키워내느라 엄마 아빠의 애간장은 얼마나 녹아 내렸을까’라는 생각에 가슴 밑바닥이 찡해져 왔다. 시인 서정주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이들을 키운 건 8할이 부모들의 한숨과 눈물이라고 말하고 싶다.

운동회 때 큰 공 굴리기를 해본 경험들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한 팀이 되어 굴리는 이 게임은 처음엔 공이 잘 굴러가는 것 같다가도 주자들이 조금만 방심하면 궤도를 이탈해 옆으로 굴러가고 만다. 그러면 주자들은 얼른 궤도를 수정해 목표점을 향해 공을 다시 굴려야 하는데 아이들은 이 굴러가는 큰 공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탈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이탈을 막으려는 부모들간의 팽팽한 대립은 어느 시대에나 다 있었다고 본다.

사춘기 청소년 시기를 일컬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지 않던가. 요즘은 ‘집단적인 정신질환을 앓는 세대’라고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데 막상 아이들과 부닥치면 그런 이성적인 판단은 흐려지게 된다.

재작년 큰애가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한참 우리 부부의 속을 썩이고 있을 때였다. 아무리 달래보고 설득하고 협박을 해보아도 아이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식사를 하려다 말고 자퇴문제로 큰애와 남편의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남편이 아이의 자퇴에 관해 이성적으로 잘 대처하고 있었는데 그날은 참지 못하고 폭발하여 커다란 몽둥이로 아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그날 남편은 하루 종일 굶었다. 남편은 아이를 때린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밥을 먹겠느냐며 한사코 먹기를 거부했으나 정작 매를 맞은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잘 먹었다. 오히려 아이는 무거운 짐을 벗어놓은 듯 홀가분해 보였다.

아이는 자신을 때린 아빠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을까, 나는 매 맞고 우는 아이도 안쓰러웠지만 아이를 때리고 괴로워서 속앓이를 하고 있는 남편을 보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아이의 학교 교장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를 즐겨 인용하신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 내겐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고난의 시기를 잘 견뎌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는 걸 이 시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다.

큰애가 졸업식 직후 내게 말했다.

“엄마, 그때 자퇴 안 하길 잘한 것 같아.”조옥남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필자 조옥남씨는 지면관계상 못다한 이야기를 개인홈페이지(monodrama.co.kr)에서 계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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