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시인,“바람소리에 귀를 씻으며 세상 소음을 털어냅니다”

  • 입력 2004년 2월 8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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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오전 충북 청주시 시인의 집 대문에는 ‘도종환님’ 앞으로 발행된 ‘등기우편물 수령통지서’가 홀로 겨울바람에 팔랑대고 있었다. 시인은 오래 집을 비운 채 없었다. 지난해 3월 자신이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학교(충북 진천군 덕산중)에 휴직계를 냈던 시인은 3일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병이 이유였다. 청주의 지인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8일 겨우 도종환 시인(50·사진)과 전화 연결이 됐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 속리산 속 외딴집에 머물고 있습니다. 사직서 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화벨이 쉬지 않고 울려 모든 연락을 끊었어요.”

도씨는 지난해 봄부터 충북 보은군 속리산 골짜기에 있는 후배 소유의 황토집에서 요양 중이다. 가끔 일이 있을 때만 청주에 나간다고 했다.

“2002년 민족예술인총연합 연수회에 참석했다가 갑자기 의자에 앉은 채로 쓰러졌어요. 그 후 감기에 걸리면 1년씩 약을 먹어도 낫지 않을 정도로 몸이 쇠약해졌습니다.”

도씨는 1990년대 민족문학작가회의 충북 지회장, 전교조 충북 지부장 등을 지냈다. ‘홍명희 문학제’ 등 지역 문화행사에서도 앞장서서 일을 해왔다. 작가회의의 한 동료는 “도 선생은 책임을 맡으면 잘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일벌레’”라며 “(발병은) 과로가 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그를 ‘접시꽃 당신’의 시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영혼 절반은 ‘교사’다. 89년 해직된 뒤 9년3개월 만에 복직했던 그는, 지금 다시 교단을 떠나겠다고 결정하고서 미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제게 글 쓰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지만…. 제대로 선생 노릇 못할 바에야 학교를 떠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산속 집에서 시인은 매일 한두 시간씩 기수련도 하고, 독서와 산책으로 소일한다고 했다. 이번주 출간될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좋은생각)에는 쉴 새 없이 굴리던 일상의 바퀴를 멈춘 뒤 찬찬히 삶을 되돌아보는 시인의 마음이 여기저기서 묻어난다.

지난해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일어난 어머니는 아직도 자식 걱정이 크다. 어머니가 바라던 평범한 행복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저버린 회한이 가슴을 친다. ‘며느리는 갓난아이 둘을 시어머니에게 맡긴 채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그런 어린 자식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는 기어코 감옥으로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잠시 세상의 모든 일들로부터 지워져 있으면 좋겠다고, 지난 세월의 고단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온갖 소음, 싸우는 소리, 제 주장만 하는 소리, 용서를 빌던 소리, 적당히 타협하자고 청하던 소리, 내 이름을 호명하던 소리들은 다 쓸려가고 바람 소리에 귀를 씻으며 깊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다.’

“아픈 몸을 자연에 맡기고 나니 자신을 돌이켜 보게 되고 고라니나 들짐승, 작은 벌레들까지 목숨 가진 것들은 모두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인적도 불빛도 없는 밤, 내 오른쪽엔 고요가 왼쪽엔 평화가 누워서 자는 것도 좋고요.”

도씨는 “몸을 추스르고 나면 옛날 해직되고, 감옥가고 하느라 못했던 문학공부를 찬찬히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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