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자유를 꿈꾸며'1996년 서태지 은퇴 발표

  • 입력 2004년 1월 30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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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에 갇힌 새는 똑같은 노래만 부르지요.”

서태지. 이제 서른을 훌쩍 넘긴 ‘10대.’ 19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보통명사’가 되었던 뮤지션.

그 느낌의 핵(核)은 자유다. 일탈(逸脫)에의 욕구다.

그는 지하시장에 잠복해 있던 TV세대의 반란을 브라운관으로 끄집어 올렸다. 그리고 그는 내내 이 전지전능한 매체를 저울질했다.

그는 지상(地上)으로 솟구쳐 오른 ‘언더’다. 그는 “내 음악의 고향은 언더”라고 말하지만 서태지는 ‘세상 밖’에서 대중을 만났다. 그는 제도권에 안착한 전위(前衛)였다. 그 양면성은 두고두고 그에게 멍에가 된다.

1992년 데뷔한 ‘서태지와 아이들.’ 3년10개월 뒤 은퇴를 선언하기까지 음반은 600만장 이상이 팔렸다. 문화적 사건이었다.

어른들은 서태지의 노래에 당황했다. 이런저런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훈시에 그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러나 어른들은 서태지의 음악에 열광할 순 없어도, 그들이 만들어 내는 열광엔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드롬이었다. 그즈음 삼성경제연구소는 광복 이후 최대의 히트상품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꼽았다. ‘서태지 담론’이 무성했다.

고교를 자퇴했던 서태지. 그의 음악에는 마이너리티 정신이랄까, 반골기질이 농후하다.

그의 매니지먼트 감각은 천부적이었다. 서태지의 상술(商術)은 그의 ‘천재성과 혁명성’의 본질이기도 하다. 대중성과 상업성이 있었기에 그는 혁명적이었던 것이다.

은퇴 발표와 복귀. 그리고 되풀이되는 잠적과 활동 재개…. 모든 문화와 사람에게는 ‘황홀한 시대’가 있다고 했던가. 어느덧 ‘서태지 신화’는 덧칠되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에게는 항상 고뇌가 느껴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노래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 팬들을 위해? 아니면 사회를 위해?”

결코 쉽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속의 나를 들여다보고, 그를 따라갈 뿐이지요….”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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