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역사의 변명' 1933년 히틀러 총리 취임

  • 입력 2004년 1월 29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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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히틀러에 대해 말할 때 새겨두어야 할 그의 어록이 있다. “승자(勝者)에게는 진실을 말했는지를 결코 묻지 못한다.”

악(惡)은 고스란히 패자(敗者)의 몫이다. 그게 인류의 역사다.

히틀러는 정신병자였는가? 그는 간혹 극단적인 편집증을 보이기는 했지만 정신병을 앓은 적은 없었다. 영국의 신경학자 프리츠 레들리히는 “그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자긍심과 열정을 갖고 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약물중독이었는가? 히틀러는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담배를 혐오했다. 채식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약물중독이라. 그는 알려진 것처럼 성(性)불구자도 아니었다.

우리는 차라리 그의 최후에서 진실의 일단을 본다.

히틀러는 패망 직전 베를린의 지하벙커에서 도피냐, 자살이냐를 놓고 수하들과 의논했다. 그리고 영혼을 바쳐 충성했던 선전상 괴벨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국민을 배반하지 말고 베를린에서 자살해야 한다.”

그는 최후의 메모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정치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내가 죽고 나면 수백만 국민이 나를 저주할 것이다. 그것이 독재자의 운명이다.”

히틀러는 권력을 강탈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했다.

1933년 총리에 오른 히틀러는 600만명의 실업자를 집권 2년 만에 200만명으로 줄였고 6년 뒤에는 사실상 완전고용을 달성했다. 생산은 2배로 늘어났다. 전 세계가 대공황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말이다.

전후 ‘라인강의 기적’은 이때 이미 시현됐다. 그는 구세주였다. 히틀러의 정치적 레토릭은 그대로 역사적 실체가 된다.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빵과 서커스면 족하다.”

독일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마지막까지 히틀러가 부여한 의무에 순응했다. 그런데도 왜 전쟁은 히틀러만의 잘못일까.

‘악의 화신’ 히틀러. 그의 존재는 ‘역사의 변명’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연합국도, 독일 국민도 무고함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는 모두를 사면(赦免)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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