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강남교수, 러 무명순례자의 수행 글 번역

  • 입력 2004년 1월 29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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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년대 후반 러시아 시골의 한 청년은 성경을 읽다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했다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구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떻게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도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궁금증이 생긴 그는 이 방법을 가르쳐 줄 스승을 찾아 나선다.》

1년여의 방황 끝에 한 수도원의 큰 스승을 만난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문을 쉬지 않고 마음으로 되풀이하는 ‘예수의 기도’를 실천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하루에 3000번, 6000번, 1만2000번 등 외우는 숫자를 늘려가면서 말할 수 없는 평안과 안식을 얻는다.

오강남 교수

이후 그는 14년간 쉬지 않고 기도했던 순례의 여정을 글로 남겼다.

오강남 교수(캐나다 리자이나대)가 최근 이 무명 순례자의 글을 번역해 펴낸 ‘기도’(대한기독교서회)는 기독교의 영성이 체험과 깨달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의 기도’는 러시아와 그리스 일대의 기독교인 동방정교회의 주요한 수행법. 이 러시아 청년은 “기도를 반복할 때 마음이 평온해지고, 팔다리로 감미로운 쾌감이 퍼지고, 기쁨으로 심장에 거품이 일며, 살아 있음에 기쁨이 일어나 모든 근심걱정과 화나게 하는 일에 대해 초연해지게 된다. 하늘나라에 간다 해도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같이 끊임없이 짧은 단어를 외우는 수행방식은 다른 종교에서도 보인다. ‘나무아미타불’ ‘옴마니반메훔’ 등을 외우는 불교의 염불이나 힌두교의 ‘하레 크리쉬나’, 이슬람교의 ‘라일라하 일랄라 무하마드 라술룰라’ 등도 ‘예수의 기도’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오 교수는 “기도문 자체에 마력(魔力)이 있다기보다는 주객(主客)을 나누는 이분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의식(意識)을 초월하는 효과가 있어 해방감과 기쁨을 얻는다고 풀이할 수 있다”며 “진정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기도의 한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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