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4년 메릴린 먼로 두 번째 결혼

  • 입력 2004년 1월 1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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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여자의 인격은 머리 모양보다도 중요하지 않다. 할리우드는 키스 한 번에 1000달러를 지불하지만, 영혼은 50센트인 곳이다.”

할리우드. 그곳은 메릴린 먼로에게 삶의 중심이었다. 세상의 축(軸)이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오직 그녀의 몸을 탐했다. 그녀를 육체 속에 감금시켰다.

1953년 그녀가 출세작인 ‘나이아가라’에서 선보인 ‘먼로 워크(Monroe Walk)’. 독특하게 엉덩이를 흔드는 그 육감적인 몸짓은 20세기의 성적 코드가 되었다. 관능(官能)은 바로 먼로의 정체성이었다.

20세기의 성(性)은 그녀를 만나 ‘대중성’을 부여받았다. ‘집단적 관음(觀淫)’이 시작된 것이다.

먼로는 13세 때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를 거닐다 사람들의 뜨거운 시선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때까지 아무 것에도, 그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았던 먼로. 그녀는 자신이 발가벗겨짐으로써 세상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만이 내가 꿈꾸어 온 유일한 집이다.”

1954년 섹시 스타로서 한창 물이 오를 무렵. 먼로는 미국 메이저리그의 영웅 조 디마지오를 만나 결혼한다. 미국인들이 가장 탐닉하는 영화와 야구, 두 분야의 스타의 로맨스는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그러나 9개월 만에 파경에 이르고 만다. 세상은 그녀가 ‘한 남자의 여자’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금발의 미녀’ 먼로의 머리카락이 사실은 염색이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녀는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그녀는 할리우드의 가부장적 시스템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한껏 남성의 판타지 속에 투사하며 생존을 도모해야만 했다. “먼로는 항시 자신에 몰입해 있었다. 그녀는 정말 수수께끼 같은 여자였다.”

자아도취와 자기혐오라는 극단적인 자기분열은 끝내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먼로는 결국 그녀의 ‘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 질식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녀의 속살’을 엿보고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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