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칼럼]우리가 남길 유산

  • 입력 2003년 11월 21일 18시 26분


코멘트
요즘 청소년들이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파트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공간을 별로 갖고 있지 못하다. 그 아파트조차도 언제 재건축사업으로 철거되어 다른 건물로 바뀌어 있을지 모른다. 어릴 적 추억이 어려 있는 장소들이 개발의 물결에 밀려 크게 변해 버린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추억을 상실한 도시의 삶은 더 황폐하다.

▼사라진 근대건축물 ▼

대한제국시대 이후 이 땅에 세워진 근대 건축물들은 대부분 철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대도시 중심가에 있던 서양식 건물들은 수십 층짜리 현대식 건물로 대체됐고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한옥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도시의 겉모습은 현대화되었을지 몰라도 인간적 체취와 낭만, 역사성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사람들은 외국에 나가 유서 깊은 건축물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는다. 우리가 아름다운 도시로 꼽는 곳은 대개 오래된 건축물을 대대손손 사용하는 곳이다.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도 등장하는 밀라노의 두오모는 400년이 넘는 오랜 공사기간이 소요된 성당으로 유명하다. 처음 이 건물을 짓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자기 생애에 건물의 완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무척 맥 빠지는 일이 아니었을까. 이들이 기꺼이 첫 삽을 뜬 것은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겨 준다는 자부심 때문이었을 게다. 오늘날 두오모를 빼놓고는 누구도 밀라노를 말할 수 없다.

우리 건축물은 나무로 되어 있어 석조건물이 많은 유럽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 목조 건물은 수명이 짧아 새로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의 사고방식은 당장의 이익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 밀라노 시민처럼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후손에게 넘겨줄 유산으로 건축물을 바라보는 시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번 주 서울 원서동의 공간소극장에서는 색다른 전시회가 열렸다. 근대건축물 보존운동을 펴 온 학자와 건축가들이 중심이 되어 주요 근대건축물을 홍보하는 행사였다. 전시회에 소개된 명동성당의 경우 건축 배경과 역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약 이 건물이 철거된다면 우리는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잃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명동성당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마땅히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보존가치가 높은 다른 근대건축물에 대해서도 명동성당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가치를 생각해야 할 때가 왔다.

아직 절망적인 단계는 아니다. 개항 이후 서구문물이 제일 먼저 들어온 인천은 ‘건축박물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여러 근대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20세기 초 전국의 3대 항구로 꼽혔다가 쇠락한 충남 논산시 강경읍은 개발의 화살이 비켜간 덕에 근대건축물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지자체들이 발상을 전환해 이런 건물을 잘 활용한다면 오히려 지역 활성화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 이런 근대건축물은 30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가 문화마인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풍납토성을 보존하는 문제가 그렇고, 청계천 복원사업도 도시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지자체들은 이제 막 문화에 눈을 돌린 단계이고 이런 요구는 문화계 등 소수의 목소리에 그치고 있는 형편이다.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과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의 옛집은 문화단체나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철거 위기를 모면했다.

▼후손에 대한 예의 ▼

근대건축물 보존이 쉽지 않은 것은 비싼 땅값 때문이다. 현재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공공단체나 학교 소유가 많은 것은 이들이 경제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탓이다. 더 이상 근대건축물이 사라지기 전에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건물을 사들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고 소유주에 대한 세금감면이나 지원도 확대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근대건축물에 대한 시민의 인식이 중요하다. 돈만 된다면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지어도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을 후손에게까지 대물림할 수는 없다. 우리 시대에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후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