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맨발의 아베베’는 아니었으나 대회 출전을 불과 한달 앞두고 맹장수술을 받았던 그인지라 세계는 아베베의 투혼에 숙연할 수밖에 없었다.
아베베가 제2차세계대전 추축국(樞軸國)의 심장부인 로마와 도쿄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거푸 따낸 것은 여러모로 뜻 깊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1935년 독일의 히틀러와 파시즘 연합세력을 구축한 뒤 그 이듬해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는데, 그 시기는 묘하게도 베를린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키며 월계관을 쓴 것이 바로 이 베를린올림픽에서였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그 몇 년 뒤 3국 군사동맹을 맺고 ‘베를린-로마-도쿄 추축’을 형성했으니, 아베베와 손기정은 이들 정복자의 땅을 번갈아 달리며 약소민족의 울분을 토해냈던 것이다.
아베베가 마라톤 금메달을 처음 거머쥔 로마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됐다. 특히 대회가 열렸던 1960년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투어 독립을 쟁취하던 ‘아프리카의 해’였기에 검은 대륙의 환호는 더욱 컸다. 당시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에티오피아 말 그대로 아베베 비킬라, ‘피는 꽃’이었던 것이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도 참가해 마라톤 3연패의 신화에 도전했으나 대회 직전 입은 다리 골절상으로 중도 포기해야 했던 아베베. 그 아베베의 생애에서 가장 값진 금메달은 따로 준비돼 있었다.
아베베는 196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게 된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돼 뛸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상태였으나 금메달의 꿈만은 접지 않았다. 아베베는 9개월에 걸친 피나는 훈련 끝에 1970년 장애인올림픽에서 마침내 또 하나의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마라톤이 아닌 양궁 종목에서였다.
아베베 비킬라. 그는 생(生)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는 꽃’이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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