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아베베 마라톤 2연패

  • 입력 2003년 10월 20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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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0월 21일.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가 제17회 로마올림픽에 이어 도쿄올림픽에서 마라톤 2연패의 위업을 일궈냈다.

비록 ‘맨발의 아베베’는 아니었으나 대회 출전을 불과 한달 앞두고 맹장수술을 받았던 그인지라 세계는 아베베의 투혼에 숙연할 수밖에 없었다.

아베베가 제2차세계대전 추축국(樞軸國)의 심장부인 로마와 도쿄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거푸 따낸 것은 여러모로 뜻 깊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1935년 독일의 히틀러와 파시즘 연합세력을 구축한 뒤 그 이듬해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는데, 그 시기는 묘하게도 베를린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다.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키며 월계관을 쓴 것이 바로 이 베를린올림픽에서였다.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그 몇 년 뒤 3국 군사동맹을 맺고 ‘베를린-로마-도쿄 추축’을 형성했으니, 아베베와 손기정은 이들 정복자의 땅을 번갈아 달리며 약소민족의 울분을 토해냈던 것이다.

아베베가 마라톤 금메달을 처음 거머쥔 로마올림픽은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에 TV로 생중계됐다. 특히 대회가 열렸던 1960년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다투어 독립을 쟁취하던 ‘아프리카의 해’였기에 검은 대륙의 환호는 더욱 컸다. 당시 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에티오피아 말 그대로 아베베 비킬라, ‘피는 꽃’이었던 것이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도 참가해 마라톤 3연패의 신화에 도전했으나 대회 직전 입은 다리 골절상으로 중도 포기해야 했던 아베베. 그 아베베의 생애에서 가장 값진 금메달은 따로 준비돼 있었다.

아베베는 1969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게 된다. 그는 하반신이 마비돼 뛸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상태였으나 금메달의 꿈만은 접지 않았다. 아베베는 9개월에 걸친 피나는 훈련 끝에 1970년 장애인올림픽에서 마침내 또 하나의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다. 마라톤이 아닌 양궁 종목에서였다.

아베베 비킬라. 그는 생(生)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피는 꽃’이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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