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4년 마틴 루서 킹 노벨상 수상

  • 입력 2003년 10월 13일 18시 38분


코멘트
‘비폭력이란 강력하고 정당한 무기로 상처 없이 잘라내며,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어준다. 비폭력은 치료의 검이다.’

1964년 10월 14일. 미국 사회가 인종차별의 강을 건너도록 ‘20세기의 모세’로 부름 받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의 나이 35세였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사에서 킹 목사는 대표적인 온건 통합주의자다. 그 대칭점에는 말콤 엑스가 있다.

킹 목사는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연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에서 소외된 흑인들에게도 같은 테이블에 앉을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말콤은 “너의 꿈은 내겐 악몽이다”라고 받아쳤다. 미국의 풍요와 번영은 흑인들의 악몽 같은 현실 위에서 피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킹 목사는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놓으라’는 기독교의 사랑을 전했으나 말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코란의 가르침을 따랐다. 커피에 크림을 타는 것 이외에는 절대로 흰색을 섞지 않았다는 말콤의 눈에 킹 목사는 백인들에게 이용당하는 ‘20세기의 엉클 톰’으로 비쳤다.

그러나 킹 목사는 그의 생애 마지막 3년간 ‘과격한 수정주의자’로 변신하게 되는데, 그것은 말콤이 암살당한 직후였다.

시카고 빈민가의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킹 목사는 물질적 풍요의 바다 한 가운데 빈곤이라는 섬에서 쓰러져가는 흑인 형제자매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말콤의 악몽’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말콤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킹 목사는 이때 처음 ‘흑인 분리주의’와 사회주의를 언급했다.

백인들은 더 이상 킹 목사를 견디지 못했다.

그들은 ‘백인의 가치관’을 가진 흑인을 원했다. 위험한 말콤 대신 비폭력적인 킹 목사를 원했다. 그러나 킹 목사는 경계를 넘어섰고, 마침내 암살당했다.

킹 목사와 말콤은 서로 머리를 맞대기를 원했으나 전 생애에 걸쳐 스쳐지나가며 인사말을 나눈 게 전부였다. 말콤은 킹 목사와 만나기로 한 바로 이틀 전에 암살당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