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아이 재능 키워주기 이젠 아버지 몫이죠"

  • 입력 2003년 8월 26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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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30컷 그리면 강아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만화가 새림이의 아버지 기효석씨(왼쪽사진 오른쪽)와 출장 때마다 가족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방문했다는 시인 병현이의 아버지 김필수씨(오른쪽사진 왼쪽),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려서 자연과 벗하는 삶을 체험시키기 위해 시골로 이사까지 했다는 번역가 연이의 아버지 박영대씨(가운데).박주일기자 fuzine@donga.com 석동률기자 seokdy@donga.com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만화 30컷 그리면 강아지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만화가 새림이의 아버지 기효석씨(왼쪽사진 오른쪽)와 출장 때마다 가족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방문했다는 시인 병현이의 아버지 김필수씨(오른쪽사진 왼쪽),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려서 자연과 벗하는 삶을 체험시키기 위해 시골로 이사까지 했다는 번역가 연이의 아버지 박영대씨(가운데).박주일기자 fuzine@donga.com 석동률기자 seokdy@donga.com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아직 어린 저자 뒤엔 아이의 꿈을 키워주는 아버지가 있다? ‘자녀교육은 엄마 몫’이란 말이 옛날 얘기란 것이 실감났다. ‘자장면을 먹은 꼬불이’(주니어김영사)의 작가 기새림(12· 경기 부천시 수주초교 6년), ‘세상은 신나는 학교예요’(문원)의 저자 김병현(12 ·서울 서초구 우암초교 6년), ‘해적들의 아기보기 대작전’(현암사)의 역자 박연(13·경기 평택시 평택여중 2년)에게는 자녀의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아버지들이 있었다.》

▽'꼬불이'의 아버지 기효석씨

꼬마 만화가 새림이의 아버지 기효석씨(45·발명가)는 딸에게 ‘스타’라는 말을 쓰길 주저하지 않는다. 미술학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새림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낙서하듯 그려놓은 ‘꼬불이’ 그림을 보고 “참 잘 그렸구나” 칭찬해 캐릭터로 발전시키고 만화책까지 내도록 한 것도 기씨였다.

“처음에 새림이는 ‘뭘 그렸느냐’는 질문에 ‘꼬불꼬불한 꼬마 뱀이니까 꼬불이지 뭐야’라고 설명해요. 그때 만화책도 아이들 눈높이에서 그리면 아이들 세계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후 새림이는 꼬불이를 주인공으로 주변이야기를 엮은 만화를 어린이신문에 연재하는 한편, 꼬박 2년의 작업을 거쳐 만화책으로 펴냈지요.”

‘자장면을 먹은 꼬불이’를 보면 새림이네가 사는 모습과 새림이가 만화 그리는 과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림이의 만화는 2002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으로부터 1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데 이어 2003년 해외수출지원작으로 선정돼 9월 출간을 목표로 일본어 번역판 작업이 한창이다.

새림이는 어려서 엄마와 함께 그림책을 많이 보았다. 요즘도 책을 많이 읽지만 만화책도 많이 본다.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수업 중 모르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선생님에게 물어보는 끈기도 있다.

기씨는 새림이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이다. 창의성을 키워주기는커녕 쓸데없이 경쟁만 시키는 제도권 교육보다 대안교육에 관심이 많다.

새림이는 코디네이터 수의사도 되고 싶지만 순정만화가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현재는 동화작가 서정오 선생님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화를 그린 ‘꿈꾸는 개구리아저씨, 옛이야기 해주세요’(가제)를 내기 위해 작업 중이다.

▽'작가'의 아버지 김필수씨

꼬마 문인 병현이의 아버지 김필수씨(44·대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아이와 함께 여행을 많이 하고 꾸준히 글쓰기 교육을 시킨 덕분에 책을 세 권이나 출판할 수 있었다고 즐거워했다. 병현이는 시집 일기집 여행기를 펴낸 데 이어 탐방기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말이 늦은 병현이에게 아내는 책을 많이 읽어주었어요. 유치원 때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글쓰기 학원을 보냈고요.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고 쓰게 됐고 여행을 통해 적성과 관심분야를 발견했습니다.”

‘세상은 신나는 학교예요’를 보면 병현이네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틈만 나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여행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학회활동이 잦은 김씨는 학회 일정에 꼭 2, 3일을 덧붙여 가족과 현지 배낭여행을 즐긴다.

처음 출판의 직접적인 계기는 병현이에게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번에 나올 ‘서울역사탐방기’(가제)는 아이가 직접 발로 밟으며 체험한 탐방기를 만들어보자는 출판사의 제의에서 비롯됐다. 병현이는 이를 위해 여름방학 내내 흥사단 친구들과 서울시내 이곳저곳을 탐방하면서 글을 써내려갔다. 그러나 병현이의 꿈은 과학자. 지능지수(IQ) 158로, 한국 멘사(Mensa)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을 묻자 병현이는 주저 없이 과학과 체육을 꼽는다. 책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읽지만 자연을 관찰하고 직접 실험해보는 과학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김씨는 병현이가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 돼야 하는데 머리가 좋아 약기만 할까봐 걱정이라고. 김씨는 “커서 책을 읽으려면 전공책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생각에 폭넓게 읽지 못하는데 어릴 때에는 책이건 여행이건 두루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영어박사'의 아버지 박영대씨

책을 세권이나 번역한 꼬마 번역가 연이의 아버지 박영대씨(42·동양화가)가 97년초 경기 안성시의 한적한 시골로 이사한 것은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의 삶을 맛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1년간 가족을 이끌고 주말마다 답사한 끝에 찾은 곳이 이곳이다. 연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내도 이곳 초등학교로 자원해 전근했지요. 초등학교 때는 신나게 놀도록 했어요. 집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오후 5시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했어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과 공차고 들로 쏘다니게 했습니다. 자연스레 자연을 이용한 교육이 이뤄졌지요.”

처음에는 텔레비전도 없고 다른 놀이기구가 없는 시골 저녁에 가족이 모여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책 읽기였다. 별다른 취미가 없던 이들 부부는 주말엔 아이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학교교육이 체계적인 독서교육보다 못하다는 것이 박씨의 신념. 온갖 분야의 책을 보면서 아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박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연이가 시골생활의 재미에 빠져있다 보니 개방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연이는 졸업 직전 뉴질랜드로 유학해 중학교 1년 과정을 마쳤다. 연이가 엄마와 함께 안성에 오면서 영어책 읽기를 시작해 200여권을 읽은 것이 도움이 됐다고.

박씨의 책을 낸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출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번역을 위해 연이에게 의뢰했다. ‘해적들의 아기보기 대작전’을 보면 ‘삐까뻔쩍 호’ ‘왕쪼잔 선장’ 같이 신선하고 창의적인 이름들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연이는 초등 6학년 때 동생 연우(초등 5년)를 주인공으로 쓴 원고지 500장 분량의 동화 ‘거꾸로 오시오, 로꾸거’의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안성=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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