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소장 “우리 고대사는 삼국시대 아닌 列國시대”

  • 입력 2003년 8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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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 소장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쟁이 돼 온 사실들을 과감히 수용한 새로운 한국사 통사를 내놓으며 “학계의 논쟁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이덕일 소장은 그동안 학계에서 논쟁이 돼 온 사실들을 과감히 수용한 새로운 한국사 통사를 내놓으며 “학계의 논쟁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김미옥기자
한국사 대중화에 힘써 온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43)이 새로운 한국사 통사인 ‘살아있는 한국사’(전 3권)를 내놨다. 다룬 시기는 단군조선부터 대한제국의 멸망까지.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우리 역사’를 시작으로 ‘사도세자의 고백’,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오국사기’ 등 학계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다수의 대중역사서를 집필해 온 그는 2001년부터 휴머니스트출판사와 손잡고 2년5개월의 작업 끝에 새로운 통사를 발간했다.

원로학자들도 부담스러워하는 ‘통사(通史)’를 40대 초반의 학자가 집필했다는 사실만 도전적인 것이 아니다. 신채호 박은식 등의 민족사학 계승을 주장하면서 노론 중심의 조선후기사를 비판하는 등 기존 학계의 ‘통설’을 반박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많은 논쟁점을 안고 있다.

“기존 학계가 아직도 식민사관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역사를 상세히 서술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경시하고 ‘일본서기’나 중국측 사료에 간략하게 기록된 것을 추종하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소장은 지금도 한국사학계에서 존중되는 이병도의 ‘조선사대관’과 이기백의 ‘한국사신론’을 정면 비판한다. 그는 단군조선의 활동무대를 만주대륙으로 보고 만주지역에서 출토되는 청동기유물의 연대에 따라 고조선 건국연대를 기원전 23세기로 추정한다. 또 고대사를 삼국 중심이 아니라 북쪽의 부여부터 남쪽의 가야에 이르는 열국(列國)시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왕조 중심의 시대구분법에도 반기를 들었다. “왕조의 교체만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할 경우 왕조가 교체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간과하기 쉽습니다.”

그는 특히 조선시대 사림파의 집권을 중요한 시대구분점으로 제시했다. 당시 진보사상이던 성리학이 이상국가의 이념으로 실현되는 시기가 바로 사림파 집권기였다는 것. 광해군을 내쫓고 왕권을 능가하는 서인 노론이 집권하면서부터 일당독재체제가 성립돼 조선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제 ‘살아있는 한국사’의 4, 5권이 될 ‘살아있는 근현대사’ 집필을 준비 중이다. 다루게 될 내용은 ‘독립운동사’와 ‘남북한현대사’.

“우리 민족의 활동무대는 본래 대륙이었고 삼국 수립 이후에는 해양이었습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활동영역이 한반도로 축소됐고, 이를 역사 속에서 고착시킨 것이 일제 식민사학이었죠. 이 활동무대를 다시 대륙과 해양으로 확대한 것은 조선이 망한 후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근현대사로 내려오면 더 많은 쟁점들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소장은 오히려 논쟁을 기다리고 있다.

“논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잘못됐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것을 인정하면 되는 것이지요. 그런 과정을 통해 역사학이 발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소장의 이런 시도에 대해 김병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연구원은 “이미 학계에서는 하나하나 쟁점별로 많이 알려져 있던 내용이지만, 통사라는 형식을 통해 일반인들이 한국사 전반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 이도학 교수(한국고대사)는 “기존 관념을 해체하고 한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이번 작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 영향은 학계보다는 대중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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