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은밀한 몸'…수치심 없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다

  • 입력 2003년 8월 1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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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도쿄 아사쿠사의 한 대형 백화점에서 화재가 났을 때 고층에 있던 많은 여성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들은 소방대원의 구명 매트리스 위로 뛰어내리기를 거부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떨어질 때 기모노가 벌어져 그들의 은밀한 곳이 보일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여자들은 속옷을 입지 않았다. 우키요에(浮世繪·도색적인 내용을 주 소재로 도쿠가와 시대에 유행했던 미술 장르)에서 보듯 신체의 은밀한 곳을 미화하는 데 능한 일본인이지만 직접적인 노출에 대해서는 수치스러워했던 것이다. 성기 자체를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본 문화권에선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 브레멘대의 교수이자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19세기부터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수많은 자료와 도판을 인용해 여성들의 성기에 대한 수치심을 분석한다. 저자의 결론은 “외음부에 대한 여성의 수치심은 개별 문명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서구에서 확고한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던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이론을 정면에서 반박하고 있다.

엘리아스는 미개 문명권은 물론 중세 이전의 서양에서는 성기 노출을 포함해 나체에 대한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않았으며 근대 초기에 와서야 수치심을 가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서구의 중세사회는 고기를 손으로 뜯어 먹고 술잔도 공동으로 사용하고 젊은 남녀가 나체로 목욕했으며 공공연하게 성행위가 이뤄진 야만적 사회였다는 것. 예절에 대한 관심이 싹튼 16세기 이후 문명화 과정을 통해 이 같은 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 사진제공 한길사

엘리아스의 관점에서 그 중요한 동인은 ‘상층 계급 권력의 보존과 확대’였다. 상층 계급은 문명화된 행동을 통해 하층 계급과 거리를 두며 비교우위를 누렸다는 것이다. 엘리아스의 이론은 ‘문명화된 유럽’의 우월성을 확인시키는 작업이었다. 이것을 확대하면 우월한 문명을 갖고 있는 서양인들은 필요하다면 총칼을 동원해서라도 미개한 종족을 개화해야 한다는 논리, 즉 식민주의를 합리화하는 밑바탕이 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고대 그리스 신화, 비서구권과 원시민족, 중세의 욕탕문화, 현대의 나체주의자에 이르는 방대한 사례를 제시하며 성기 노출에 대한 수치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이론이 허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은밀한 몸’ 이외에도 ‘나체와 수치’, ‘음란과 폭력’, ‘에로틱한 육체’, ‘성의 실태’ 등 5권으로 이루어진 ‘문명화 과정의 신화’ 연작에서 엘리아스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은밀한 몸’과 함께 한국어판이 출시된 ‘음란과 폭력’ 역시 같은 논리선상에 있다. 성과 관련된 행동(성폭행 등)은 언제 어디서나 항상 공격적인 양상을 띠고 있으며 역사적 지역적으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도시화된 서양 문명이나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이나 성 문제 해결 방식은 똑같다는 주장이다.

독일 서평자의 말처럼 다른 이와 함께 보기에는 어색한 수준의 도판이 많아 지하철이나 해변보다는 조용한 방에서 혼자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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