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천재와 조직 그리고 "왜"…윤송이 박사의 리더쉽

  • 입력 2003년 6월 19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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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송이 박사(오른쪽)와 SK텔레콤 CI사업추진 팀원들. 윤 박사는 제대로된 조직에 대해 “일을 하며 조직원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한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윤송이 박사(오른쪽)와 SK텔레콤 CI사업추진 팀원들. 윤 박사는 제대로된 조직에 대해 “일을 하며 조직원들이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곳”이라고 정의한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입사 4년차 오한진 대리(33· SK텔레콤)가 지난해 11월 새로 구성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개발팀으로 발령받았을 때 몇몇 주변 사람들은 걱정을 내비쳤다.

“그 팀장…. 독불장군은 아닐까?”

평범한 이력의 상관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윤송이. SK텔레콤 CI사업 추진 팀장.

스물일곱살의 여자. 서울과학고 2년 만에 조기졸업. 한국과학기술원(KAIST) 수석졸업. 매사추세츠 공과대(MIT)에서 3년6개월 만에 박사학위 취득. 귀국 후 맥킨지사 컨설턴트. 별명 ‘천재소녀’.

그러나 첫 모임부터 ‘독불장군 천재’의 우려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회의는 원탁에서 진행됐다. 팀원들 누구나 제한없이 발언하고 문제제기하며 브레인스토밍을 했다. 윤 팀장이 팀원들에게 질문한 것은 한 가지였다.

“우리가 왜 지금 이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함께 일한 지 7개월여. 오 대리는 팀장인 윤 박사의 ‘비범한 능력’에 압도된다든가 그의 존재를 크게 의식하는 일은 없다. 대신 직장생활 시작 후 가장 분명하게 ‘일하는 게 재미있다, 내 일을 하고 있다, 발전하고 있다’고 자각한다. 팀원 각자가 오 대리처럼 자기완결적인 존재로 변모하는 것이야말로 팀 창설 때 윤 박사의 목표였다.

윤송이 박사에게 ‘소통(communication)’은 일관된 연구주제다. MIT 박사학위 논문 주제인 ‘감성을 가진 합성 캐릭터(affective synthetic character)’는 인간과 기계와의 대화를 중재하는 디지털 존재를 만든 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인간과 인간의 대화가 원활해지기를 바랐던 겁니다.”

윤 박사의 일상에서도 ‘소통’은 핵심적인 기호다. 공학자라면 아무리 비범해도 혼자서 사람들이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윤 박사는 일찍 자각했다. 학부 때부터 경영학 강의를 들었다. 팀플레이에 익숙해지려 했다.

“언젠가 한 팀원이 조직생활은 B급인 사람들에게 맞는 것이고, A급은 혼자 일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어요. 저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나 조정능력은 아무리 뛰어난 사람들에게도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에요.”

스물다섯명의 팀원들을 일일이 인터뷰해 선발하며 윤 박사는 각자 갖고 있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능력의 ‘일부’로만 계산했다. 얼마나 리더십이 있는가, 얼마나 자신이 맡은 일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나가 오히려 관건이었다.

팀원의 절반 이상이 윤 박사보다 나이가 많고, 여섯 명은 동문이지만 윤 박사는 이력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유의미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수준이든 동료 집단(peer group)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주제의식을 공유하는가에 있습니다. 최고의 것을 만들어 내놓고도 ‘더 잘하자’고 할 때 이의 없이 도전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야 해요.”

지난해 11월 CI 사업 추진팀을 창설하며 윤 박사는 한 가지를 관철했다.

‘중장기기획부터 마지막 단계인 고객반응을 피드백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팀에서 맡겠다.’ 부서간 협력체제로 사업을 추진하는 대기업의 업무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사이클을 전부 파악하는 것. 그것은 윤 박사가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탐구할 때의 방식이기도 했다.

팀의 임종규씨(29)는 윤 박사의 카리스마를 ‘왜(why)의 리더십’이라고 요약했다.

“아마 팀원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왜’일 겁니다. 상의하달의 기업문화에서는 ‘이거 고쳐와’라고 지시하지 윤 팀장처럼 ‘이건 왜 그렇죠?’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라고 질문하지 않아요. 답하느라 골머리를 앓다 보면 ‘내 일을 하고 있구나’라는 의식이 생깁니다. 눈앞의 소소한 과정에 매달리기보다는 큰 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되고요.”

윤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질문 역시 “왜?”다.

“팀원들이 제 방식을 부정하고 자기 해법을 갖고 맞설 때 제일 기분이 좋죠.”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공학자들은 답만이 아니라 문제 자체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스스로 ‘왜’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팀장의 리드 없이도 자기 몫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강한 조직이 되는 것이다.

윤 박사는 곧 모바일공간에서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서비스를 선보일 것이다. 윤 박사가 팀원들과 함께 만든 작품은 모바일 서비스만이 아니다. 일을 하며 구성원들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조직모델을 만든 것. 그것이 또 다른 생산물이다. 윤송이 박사는 ‘실험실의 외로운 천재’라는 낡은 신화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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