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등정 10주년 '여성원정대' 정명숙씨 등 4명

  • 입력 2003년 5월 27일 18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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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세계에서 여성 등반대로는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한국 여성 등반대원들. 왼쪽부터 손승주 곽명옥 정명숙 최오순씨.-김미옥기자
10년 전 세계에서 여성 등반대로는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한국 여성 등반대원들. 왼쪽부터 손승주 곽명옥 정명숙 최오순씨.-김미옥기자
“우리가 올라선 것은 세계 최고봉이 아니라 성차별의 벽이었습니다.”

93년 5월10일 14명으로 이뤄진 ‘한국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세 차례의 도전 끝에 에베레스트(해발 8850m)를 정복했다. 여성 단일팀으로는 일본의 다베이 준코팀(75년)과 네팔-인도 합동팀(93년 봄)에 이은 세 번째였다.

영국인 에드먼드 힐러리의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29일)을 앞두고 세계가 시끄럽지만 이들 한국여성 원정대의 등정 10주년은 조용히 지나갔다. 무슨 사연일까.

당시 대원 정명숙(鄭明淑·43·등정대 부대장) 최오순(崔五順·36·사업) 곽명옥(郭明玉·42·사업) 손승주(孫承珠·35·학원강사)씨를 22일 정씨가 운영하는 서울 중구 충무로 죽집에서 만났다.

여성 에베레스트 등정의 꿈은 91년 여성 산악인들 사이에서 영글어갔다. 그러나 92년 초 실행단계에 들어가자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스폰서와 훈련을 맡겠다고 나선 남자 산악인들이 ‘여자들이 처음부터 무슨 에베레스트냐’며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한 것.

“등반은 결과뿐 아니라 준비 과정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하려 했고 남자들과의 힘겨운 신경전이 계속됐습니다.”(정명숙)

대원들은 지현옥(池賢玉)씨를 대장으로 해 4개월의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도봉산 꼭대기를 뛰어서 오르내렸고, 전 대원이 팔굽혀펴기 200회를 거뜬히 할 만큼 체력을 키웠다. 그러나 남자들의 압박은 계속됐다. 선발대로 현지에 간 정 부대장이 ‘(남자들) 허락도 받지 않고’ 셰르파를 골랐다는 이유로 한때 직위 해제되기도 했고 동행키로 한 KBS 촬영팀은 ‘성공 가능성이 없다’는 말에 출발 당일 촬영을 취소했다.

“모두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절대 성공해야 한다’며 입술을 깨물었죠.”(최오순)

이들은 악천후 속에서 5000m 고지 베이스캠프와 8000m 고지의 4캠프를 세 차례나 오르내린 끝에 지현옥 최오순 김순주씨 등 3명이 정상에 서는 감격을 누렸다.

금의환향은 했지만 성차별의 장벽에서 입은 내상(內傷)은 컸다. 이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지 대장의 독려에도 대부분 산행을 포기하고 제 삶을 찾아 떠났다.

뿔뿔이 흩어진 이들을 6년 만에 다시 불러모은 것은 역시 지 대장이었다. 혼자서 외롭게 세계 고봉 순례에 나섰던 지 대장은 99년 4월30일 안나푸르나봉에서 실종됐고 이를 계기로 대원들은 다시 만났다. 연례 모임을 갖고 있는 이들은 요즘 에베레스트를 다시 찾을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리가 에베레스트에 다시 베이스캠프를 치는 날, 산이 좋아서 아직도 내려오지 않고 있는 지 대장도 꼭 찾아 올 겁니다.”(곽명옥)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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