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네이티브 스피커'…佛입양아, 원초적 그리움

  • 입력 2003년 5월 23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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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스피커/이창래 지음/올리비에출판사

2년 전 프랑스 문단에서 제스처 라이프(프랑스어 번역 제목 ‘과거의 어두운 불빛·Les sombres feux du pass´e’)로 호평을 받았던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창래의 첫 번째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Langue natale)’가 최근 같은 출판사에서 프랑스어로 번역돼 나왔다. 1.5세대 재미동포 작가인 그의 소설들은 영어로 쓰인 후 한국어, 프랑스어로 번역된 넓은 의미의 ‘한국 문학’ 범주에 속하는 흔치 않은 작품들이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적 이유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삶의 둥지를 트는 ‘디아스포라’의 물결이 거세지는 현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이민 문학’의 전형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창래의 두 소설 모두 해외에 사는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네이티브 스피커’는 한국계 미국인인 헨리 박의 주변적 삶을 통해, ‘제스처 라이프’는 한국계 일본군 군의관 출신으로 전쟁 후 미국인이 된 프랭클린 하타의 이중적 삶을 통해 ‘정체성의 문제’를 그 특유의 절제된 언어와 담백한 필체로 그려냈다.

얼마 전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루앙대의 한국학 홍보를 위해 학생들과 함께 루앙시에서 열린 국제박람회 행사에 참가했다. 마침 올해는 한국이 주빈국(主賓國)이어서 한국문화 강의를 듣는 루앙대 학생들에게는 한국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행사장에서 뜻밖의 손님들을 만났다. 한국 입양아들과 그들의 프랑스 양부모들이었다.

프랑스 내에서도 이곳 노르망디 지역은 오래 전부터 한국 아이들의 입양이 시작된 곳이다. 입양아 중에는 이제 성인이 되어 자기 아이들과 함께 박람회장의 한국관을 찾아온 경우도 있었고, 부모 손에 끌려 온 갓 입양된 아이들도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자신의 뿌리를 그리워한다는 것이었다.

입양아 중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어 네이티브 스피커’는 없었지만, 어느 누구도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프랑스 양부모들의 태도였다. 양부모들은 모두 한국 출신 아이들이 뿌리를 잊지 않도록 다음 휴가 때에는 한국을 꼭 방문할 것이라며 필자에게 아이들을 위한 한국 문화, 한국어 교육이 가능한지 물어왔다.

프랑스에서 ‘네이티브 스피커’를 읽으며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민자의 후손이든 입양아든, 그들이 어떤 국적을 갖고 있든, 모국어가 무엇이든, 그들이 지구 반대편에 다른 뿌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근원으로 회귀하려는 원초적 본능을 억누르지 않을 때 두 문명의 틈바구니에 끼인 그들이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두 문명을 아우르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우리의 혈육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을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도 좀더 열린사회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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