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황소개구리의 몰락' 맬서스는 알고 있었다

  • 입력 2003년 5월 22일 16시 41분


코멘트
1990년대 중후반 왕성한 번식력으로 한국 자연 생태계를 뒤흔들었던 황소개구리. 다 자란 것 중 큰 개구리는 뒷다리 끝부터 머리까지의 길이가 60㎝나 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 중후반 왕성한 번식력으로 한국 자연 생태계를 뒤흔들었던 황소개구리. 다 자란 것 중 큰 개구리는 뒷다리 끝부터 머리까지의 길이가 60㎝나 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90년대 말까지 한국 자연 생태계에서 천적이 없는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황소개구리.

그 수가 최근 현격히 줄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발간한 ‘생태계의 무법자 외래 동식물’에서 “황소개구리가 생태계 적응 능력 부족으로 1997, 98년에 비해 약 70%가량 개체수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1997년 전국 61개 주요 시군구에서 발견됐던 서식지도 약 20개 지역으로 줄었다. 전남 나주, 경남 창녕 등 남부지방을 빼면 중부지방에서는 더 이상 황소개구리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환경부는 현재 수준의 황소개구리 수라면 생태계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황소개구리가 사라진 것은 인간이 황소개구리를 많이 잡아서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자연의 억제력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공교롭게도 이 자연법칙은 고전경제학의 한 이론으로 설명된다. 1798년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발표한 ‘인구론’. 물론 그가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황소개구리’가 아니라 ‘인간’이었다.

● 절대 강자 황소개구리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구에 비해 식량은 절대적으로 모자라게 된다. 남은 식량을 두고 다투느라 전쟁과 살육이 일어난다. 인구가 넘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자연재해를 막을 힘도 사라진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죽어간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이 먹을 만큼의 충분한 식량이 확보될 때까지 인구는 계속 줄어든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맬서스가 주장한 인구론의 요체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전제가 있다. 인류가 천적이 없는 생태계의 절대 강자라는 점이다. 인간은 생태계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최상위 포식자. 가끔 인간이 사자 등에 잡아먹히기도 하지만 그런 드문 일로 사자를 인간의 천적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황소개구리가 그랬다. 미국 동부가 고향인 황소개구리는 1970년대 초반 식용을 목적으로 수입됐다. 그러나 개구리 판매가 시원찮아지면서 1990년대 초부터 무분별하게 산과 호수에 버려졌다.

그렇게 버려진 황소개구리가 한국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보통 개구리는 뱀이나 때까치 같은 조류에게 잡아먹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길이 60cm에 무게가 1kg인 이 초대형 개구리를 잡아먹는 뱀이나 새는 없었다.

반면 황소개구리는 곤충은 물론 물고기와 토종개구리, 참게 심지어 개구리의 천적이라는 뱀까지 잡아먹으며 생태계의 절대 강자가 됐다. 즉 천적이 없는 최상위 포식자가 된 것. 게다가 황소개구리는 산란기인 4∼6월 마리당 1만개가 넘는 알을 낳는 왕성한 번식력을 갖고 있었다. 토종 개구리는 100∼ 800개의 알을 낳을 뿐이다.

외래 동물로 한국 토종 동물을 마구 잡아먹는다는 점에서 황소개구리는 블루길이나 큰입배스 같은 외래 어종과 비슷하다. 그러나 블루길과 큰입배스는 쏘가리 등 토종 천적을 만나는 바람에 절대 강자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다. 심지어 블루길은 큰입배스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두 어종 모두 한국 자연 생태계의 먹이사슬 안에 포함되면서 자연의 억제를 받아 그 수가 급증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다.

● 황소개구리에 적용된 인구론

전문가들은 절대 강자였던 황소개구리가 사라진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한국양서파충류연구소 소장 심재한 박사의 설명.

우선 90년대 초반부터 황소개구리 수가 급증하면서 이들의 먹이인 곤충, 작은 물고기 등이 그들의 서식처에서 크게 줄었다. 맬서스의 지적대로 인구(황소개구리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식량(먹잇감)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었거나 혹은 오히려 감소한 것.

또 같은 지역에서 너무 많은 황소개구리가 살다보니 근친교배가 생겼다. 여기 저기 서식처를 옮겨 다니는 동물은 근친교배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황소개구리는 우포늪이면 우포늪, 한 곳에서 평생을 산다. 따라서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날수록 근친교배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근친교배는 열성 유전자를 자손에게 전해준다. 열성 유전자를 가진 개구리는 수명도 짧을뿐더러 열성 인자를 자손에게 그대로 물려준다. 심 박사는 “황소개구리 서식처에 가보면 최근에 유독 기형 개구리가 많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 대목도 ‘인구가 과포화상태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질병과 전염병이 돈다’는 맬서스의 예측과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절대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천적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여전히 황소개구리를 먹이로 삼는 동물은 없지만 가물치 메기 등 토종물고기와 큰입배스, 블루길 등 외래 물고기가 황소개구리의 올챙이를 잡아먹기 시작한 것. 왜가리, 고니 등 새들도 황소개구리의 올챙이를 ‘식단’에 올렸다. 황소개구리도 저연의 먹이사슬 속에 서서히 엮여 들어가게 된 것이다.

● 자연의 억제력

황소개구리에 뒤이어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는 붉은귀거북

90년대 초반부터 개체수가 늘기 시작한 황소개구리는 97, 98년 황소개구리 소탕이 ‘국민적 과제’가 될 정도로 그 수가 급증했다. 환경부는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황소개구리 시식회’를 열었다. 황소개구리를 잡는 중고교생에게 봉사 점수를 주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황소개구리 잡기’를 실업 해소 대책으로 이용했다. 실업자들이 공공근로 수당을 받고 개구리를 잡았다. 이들에게 들인 돈과 잡은 개구리 수를 비교해보니 ‘개구리 한 마리 잡는데 국민 세금 1만원이 들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황소개구리를 잘 잡는 특수 그물도 등장했다. 황소개구리의 독특한 성호르몬을 이용, 황소개구리 수컷만을 유인해 잡을 수 있다는 ‘섹스트랩’도 등장했다.

그러나 황소개구리는 이런 ‘인간의 법석’보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입해 해석할 수 있는 생태계의 억제력에 의해 줄어들었다. 6년여 만에 생태계 ‘최악의 포식자’에서 ‘평범한 개구리’로 전락한 것. 심 박사는 “황소개구리는 5, 6년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고 10년 정도 후에는 외래종이 아니라 토착동물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황소개구리의 빈 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절대강자’는 미국 미시시피강 출신의 붉은귀거북이다. 1970년대 애완용으로 한국에 들어온 이 거북은 1996년부터 수요가 급증해 2001년까지 650만마리가 수입됐다. 종교단체가 붉은귀거북 수백 마리를 한꺼번에 하천에 방생하는 일도 잦았다.

붉은귀거북은 자기보다 몸집이 큰 붕어도 잡아먹는 포식자. 딱딱한 등껍질 덕에 이들을 먹이로 삼는 천적도 없는데다가 수명도 20년이 넘는다. 잡식성으로 붕어 미꾸라지 피라미 개구리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아열대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종이지만 한국의 추운 겨울도 ‘동면’으로 거뜬히 넘긴다. 모래톱에서 알을 낳는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조사 결과 다소 질퍽한 한국 강가의 흙에서도 알을 낳아 부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외래종으로서 한국 환경에 거의 적응한 셈.

붉은귀거북의 ‘횡포’가 심해지자 환경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미 붉은귀거북을 ‘생태계 위해 외래 동식물’로 지정한 환경부는 7일 “전국 16개 시도와 함께 붉은귀거북의 서식실태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부의 대응은 과거 황소개구리 때처럼 소란하지 않다. 불법판매를 집중 단속하는 한편 종교단체에 이 거북의 방생을 자제해 달라는 홍보를 계속하는 정도다.

환경부 자연생태과 김수삼 사무관은 “과거 황소개구리 때는 환경부가 좀 과잉 대응한 면이 있었다”면서 “붉은귀거북에 대해서는 무조건 ‘때려잡자’ 식으로 홍보하기보다 자연의 억제력을 지켜보면서 조용히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환경부는 제주도 천지연 등 생태계 보전지역을 빼면 붉은귀거북을 정부 차원에서 잡는 방법은 피하고 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