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채현/'정보 유목시대'를 사는 법

  • 입력 2003년 5월 16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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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7월11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는 ‘나담’ 축제가 열린다. 나담은 몽골말로 축제이며 2박3일간의 나담 축제는 국가 행사다. 개막식에 대통령도 참석하고 민속 퍼레이드도 곁들인다. 이 축제의 백미는 씨름, 활쏘기, 말타기 시합이다. 모두 몽골의 3대 스포츠로 과거에는 군사 교련 종목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나담 축제를 참관해 보니 첫날에는 씨름판이 준비되어 있었다. 씨름 우승자는 말, 낙타, 황소 등의 목축을 수여받고 국가 영웅으로 공인된다. 축제장에 들자 씨름꾼들은 워밍업을 하고 있었다. 땡볕에 차양도 없는 풀밭에서 워밍업하고 기량을 겨룬다는 소개말은 짐작할 만한 내용이었다.

▼時空間자유-동시다발성 특징 ▼

그러나 정작 시합이 시작되자 이해하기 어려운 색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일시에 20판 넘는 시합이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판마다 심판이 2명 붙었다. 듣건대 체급이나 시합 시간도 무제한이며, 링이라 할 것도 없는 풀밭은 아무 구획도 지어지지 않은 채 무수한 씨름판이 되었다. 출전자와 심판이 합의하는 곳이 바로 씨름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웅을 겨루는 사람들, 나가떨어지는 사람들, 이겼다고 송골매처럼 양팔을 활갯짓하며 유유히 너울대는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정보를 찾아 이동하는 시대의 사람을 일컬어 ‘정보유목민’이라 한다. 이 말은 유목민이 떠돌아다닌다는 가정에다 시공간상의 차이를 상정하는 뉘앙스가 짙다. 그런데 유목국 몽골이 씨름을 진행하는 방식인 ‘동시다발성’도 유목의 특성임을 시사한다.

이동 목표와 이동 경로는 유목의 양대 조건이다. 유목민은 무작정 이동하지 않는다. 풀과 물이라는 정보를 토대로 이동한다. 정보유목민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다양한 정보의 동시 존재는 정보 유목 활동의 전제조건인 것이다. 그리고 각 개체를 연결하는 속도의 비중은 가히 절대적이다.

일본 교토시는 어느 초등학교를 교토예술센터로 개조했다. 1860년대에 개교한 이 학교가 몇 해 전 예술센터로 변신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전형적인 초등학교를 연상시키는 나무바닥 복도와 교실, 복도 유리창, 걸상, 나무계단을 그대로 살려 이 공간의 역사적 흔적이 고풍스럽게 유지되고 있었고 엘리베이터가 추가되었다. 교실은 자료실, 예술인들의 스튜디오, 카페 따위로 쓰이고 강당은 서울의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보는 식의 안방 스타일 공연무대로 개조되었다. 여기서 국제행사도 열린다. 서울∼부산보다 조금 먼 도쿄∼교토를 신칸센이 160분에 주파하므로 도쿄에서 3시간이면 이 센터에 도착한다.

획일적 사고에서는 유목이 불가능하다. 800년 전 몽골이 세계를 지배한 비결은 당시 최고 이동수단인 말 덕택이라지만 몽골제국이 각 정복지의 문화적 고유성을 존중한 것도 비결의 하나로 중시된다. 환경의 차이가 곧 문화적 차이라는 체험적 인식이 평소 유목생활에서 체질화됐기 때문이다. 몽골 씨름 진행방식에서도 유추되듯 유목 마인드는 다원적 마인드다. 다양한 정보와 다양한 개체의 동시적이며 동등한 존재는 유연성, 개방성을 통해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다원적 마인드 없이는 도태 ▼

과거 한국에는 고개 하나 너머에 또 다른 문화가 하나 있다고 했다. 노령산지 환경이 한국 문화의 다양성을 낳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풍요한 문화자산은 정보유목시대에 이동 목표로서 잠재력이 막대하다. 그러나 가치 없는 정보는 이동 목표에서 탈락한다. 문화에서 ‘가치’란 결국 정체성과 고유성, 그리고 활용 가능성으로 귀착된다. 다시 말해 소지역도 특정 문화에서는 많은 연결선을 갖는 허브(hub·중심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문화에서는 획일성부터 금기시된다. 새정부 출범이후 광주(光州)를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는 ‘문화 수도론’에서도 서울 중심의 문화수도 관행을 불식하고 아울러 다양한 문화 수도(허브)를 촉진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문화로써 발돋움하려는 크고 작은 지역들은 문화 ‘가치’ 다듬기에 전력해야 할 것이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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