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학동 떠나 신문로 시대 연 '일지사' 김성재 대표

  • 입력 2003년 5월 1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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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2가 새 사옥 앞에 선 김성재 대표. -김동주기자
신문로 2가 새 사옥 앞에 선 김성재 대표. -김동주기자
학술 출판의 외길을 걸어온 ‘일지사’가 27년간 머물러 온 서울 종로구 중학동을 떠나 최근 신문로 2가 성곡미술관 건너편에 사옥을 마련했다. 기존의 사옥이 중학동 재개발사업에 포함됐기 때문인데, 김성재(金聖哉·76) 대표는 이를 못내 아쉬워했다. 이삿짐 정리도 채 마치지 못한 새 사옥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1975년에 마련한 중학동 사옥은 출판사가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와 건축을 했거든요. 이렇게 집을 옮기게 돼서 사실 굉장히 서운합니다. (웃음) 27년 동안 한 군데에 있었으니 그 짐이 어마어마했지요. 사나흘간 오가며 짐을 날랐는데 아직도 남은 책이 있네요.”

새 사옥 3층에 자리잡은 김 대표의 사무실 두 벽은 ‘일지사’가 펴낸 책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책장을 훑어보다 김 대표가 직접 쓴 ‘출판의 이론과 실제’에 눈길이 갔다.

1985년 초판을 찍은 이 책은 출판 관련법 개정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꾸준히 개정판이 나왔으며, 올해 3월에 7판이 선보였다. 지금은 초기의 판본에 비해 2배가량 분량이 늘어났다. 6판을 발간한 지 꼭 2년 만에 새로운 판을 낸 것은 지난해에 제정돼 올 2월부터 시행하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 때문.

그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며 관련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한 메모를 들고 와 한참이나 설명을 이어 갔다. 한국 출판의 살아 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원로 출판인은 여전히 출판 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는 “요즘 출판계를 보면 오락 기능에 지나치게 치우친 책들이 ‘좋은 책’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 같다. 출판의 주목적은 문화의 창조와 전승, 지식의 보급과 교육에 힘쓰는 것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돈 안 되는 일’이라고 고개를 내젓지만 김 대표는 학술출판을 ‘출판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출판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반드시 학술출판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오랜 믿음이며 출판의 목적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에서 시작한 계간 학술지 ‘한국학보’도 이번 여름호로 통권 111호를 맞는다.

“내면 낼수록 적자가 나지만‘‘‘ 해야 하는 일이 틀림없으니까 합니다. 처음 ‘한국학보’를 내겠다고 김원룡 박사께 말씀드리니 ‘되지도 않는 소리 하지도 말라’고 말리셨는데…. (웃음) 끝까지 해야지요. 나는 이 길, 학술출판의 길에 들어선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습니다.”

김 대표는 오전 9시10분에 출근해 오후 6시15분에 퇴근한다. 퇴근시간이 6시15분인 것은 직원들이 6시에 모두 퇴근한 뒤 회사를 한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시간 15분을 생각한 것. ‘일지사’의 점심시간은 북적일 때를 피해 오후 1시다. 일곱 번이나 고치고 다듬은 책, 귀하게 생각하는 시간, 출혈을 감수하고 발간해 온 111권의 학술지는 그의 책상 위 낡고 손때 묻은 주판과 잘 어울린다.

“주판? 계산기 두드리는 것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거든, 나는.” (웃음)

앞 다투어 서두르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는 ‘나의 길’을 고집스레 간다.02-732-9320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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