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노동은교수 "실학자 홍대용, 양금 들여와 토착화"

  • 입력 2003년 4월 30일 19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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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 중 서양에서 전래돼 토착한 악기인 양금을 연주하고 있는 기생. -동아일보 자료사진
국악기 중 서양에서 전래돼 토착한 악기인 양금을 연주하고 있는 기생. -동아일보 자료사진
조선후기 실학자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1731∼1783)의 한글여행기 ‘을병연행록’에는 홍대용이 청나라 베이징의 한 천주당에 들러 파이프오르간(풍금)을 처음 보고 음악을 연주해 주위를 놀라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서양은 바흐와 하이든이 활동하던 바로크 음악시대. 홍대용이 거문고의 명인이긴 했지만 어떻게 처음 본 파이프오르간을 직접 연주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노동은(魯棟銀) 중앙대 예술대 교수는 3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국제 실학 학술회의’(경기문화재단 주최)에서 “담헌서 등 당시 문헌 연구 결과 홍대용이 베이징에서 서양악기인 양금(洋琴)을 처음 들여와 토착화시킨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양금은 유럽에서 ‘덜시머(Dulcimer)’로 불렸던 피아노의 원형으로 채로 현을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 서양에선 채 대신 건반을 달아 하프시코드가 되고 후에 피아노로 발전한 악기다. 국내에 들어온 양금은 대갓집 사랑방 중심의 음악회 문화인 율방(律房)의 조율(調律)악기로 자리 잡았을 뿐만 아니라 국악 합주에 다양하게 녹아들어 완전한 우리 악기로 정착했다.

노 교수는 “홍대용이 양금을 들여왔을 뿐만 아니라 양금을 통해 서양음악이론을 이해하고 중국 중심의 음악 세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시대에는 12율(律·서양의 12음정과 비슷함)을 구분하고 황종(黃鐘)을 기준음으로 삼았다. 이 기준음을 얻기 위해 대(竹)로 율관을 만들고 여기에 곡식의 일종인 기장을 담았다. 해주지방에서 나온 기장 1알의 폭을 1분(分)으로 삼고 10알 길이를 1촌(寸)으로 해 9촌의 길이를 황종 율관의 길이로 삼았으며 이러한 황종척(尺)으로 황종을 만들었다.

그러나 홍대용은 기후가 다른 조선과 중국에서 기장 1알의 크기가 다를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런 식으로 기본음을 찾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대안으로 양금(洋琴)에서 정율(正律)을 찾았다.

노 교수는 “홍대용이 양금에서 정율 찾기를 확신한 것은 실제로 양금을 수용해 조율악기로 삼아 합주를 해본 결과 정확한 소리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선 김수현 목원대 강사는 “양금에 의한 조율이 곧 합리성이라는 근대성과 관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이로 인해 우리 음악적 감수성이 평균율을 따르는 서양식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송평인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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