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의 뇌의 신비]전두-두정엽에서 정보편집 인식못해

  • 입력 2003년 4월 27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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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시몬즈란 학자는 사람들이 공 뺏기 놀이를 하는 도중 슬며시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을 그들 가운데에 넣어 보았다. 게임이 끝난 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은 불과 42%뿐이었다. 그들이 고릴라의 영상을 보지 못했을 리는 없다. 하지만 고릴라는 뇌에서 ‘인식’되지 못했다. 그들은 공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릴라 상을 시야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이처럼 관심 없는 물체를 시야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을 ‘부주의적 장님’이라 부른다.

우리의 뇌에서 관심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가려내고 이 중 덜 중요한 것을 지우는 일을 하는 곳은 ‘전두엽(이마엽)-두정엽(마루엽) 회로’이다.

부주의적 장님과 조금 다른 현상으로 ‘습관적 장님’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습관적인 자극이 계속 되는 경우 달라진 것을 보지 못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 자주 만나던 여자 친구가 모처럼 머리에 예쁜 핀을 꽂았는데 남자가 이를 눈치 채지 못한다면 이는 습관적 장님 현상이다. 이때 여자는 남자를 쏘아붙일 자격이 충분히 있다. 남자가 여자를 ‘습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의 주의 집중은 평소의 감정에 의해 조절되기도 한다. 예컨대 ‘강간’이란 단어가 적힌 종이를 여러 다른 단어가 적힌 종이 가운데에 두면 사람들은 이 단어를 더 빨리 찾아낸다. 그 단어가 주는 무서운 감정 때문이다.

종로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 정보는 우리의 시각 중추에 들어오자마자 지워져 버린다. 하지만 옛날 애인과 얼굴이 비슷한 사람이 지나간다면 금방 눈에 띈다. 만일 운전 도중 아리따운 여성이 앞을 지나간다면 운전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나머지 시야는 완전히 안 보일 수도 있기 때문.

결국 뇌의 감각 중추에 전달된 정보들은 전두엽-두정엽 회로, 혹은 감정 중추 등으로부터 조절 당하고 편집된다. 이것은 신문사에서 입수한 수많은 뉴스 중 중요한 것만을 추려 편집하는 행위와도 같다. 이러한 뇌의 작용은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에 대해 효과적으로 집중하려는 진화적 전략이다. 하지만 ‘부주의적 장님’ 현상 때문에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지 않아도 눈이 앞에 달려 시야가 좁은 우리 인간인데 말이다.

김종성 울산대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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