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로 지령 400호 맞는 '샘터' 4인의 필자 아름다운 목축임

  • 입력 2003년 4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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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다운 것이다.’

월간지 ‘샘터’가 6월호로 지령 400호를 맞는다. 1970년 4월에 태어나 올해로 33세가 되는 ‘샘터’에는 호마다 평균 50여명, 연인원 2만여명의 필자가 글을 썼다. 이 가운데 수필가이자 시인인 피천득 선생(94), 법정 스님(71), 소설가 최인호씨(58), 시인 이해인 수녀(58)는 20∼30여년간 샘터와 함께 발맞춰 걸어온 필자들로 샘터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 오고 있다.

피 선생은 서울대 총장을 지낸 장리욱 박사(1895∼1983)를 통해 샘터와 연을 맺게 됐다. 장 박사는 김재순 샘터 고문(당시 대표)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샘터 설립에 큰 도움을 준 인물.


1973년 10월 ‘찰스 램의 끝없는 사랑’으로 샘터에 모습을 드러낸 피 선생은 20여년 전 “더 이상 산문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까지 샘터에 글을 썼다. 1988년 12월호에는 자필로 쓴 ‘새’라는 시가 수록됐고 지난해 8월에는 월드컵의 감동을 쓴 시 ‘붉은 악마’와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환호하는 선생의 사진이 함께 실리기도 했다.

70년대 김 고문이 일본 출장길에서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뒤 피 선생에게 선물한 것이 이들의 인연을 더욱 두텁게 이어줬다. 선생이 사랑하는 딸 서영이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었고 선생은 수필가보다는 시인이기를 소망했기 때문.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피 선생에게 세배를 가기 시작한 김성구 샘터 사장은 요즘 선생과 매달 한 번씩 같이 목욕탕에 간다.

피 선생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현재 서울 서초구 반포본동 자택에 있는 그의 방을 그대로 샘터 사옥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피천득의 방’은 3년 후쯤 파주출판단지에 세워질 새 사옥 설계도에 이미 자리 잡고 있다.

법정 스님이 샘터에 처음 글을 실은 것은 창간 2주년이 된 1972년 4월호. 당시 샘터에서 일하고 있던 시인 강은교가 스님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도둑맞은 시계를 되찾은 ‘탁상시계 이야기’를 시작으로 스님은 1973년 7월부터 ‘다래헌 한담(茶來軒 閑談)’을 연재했으며 그 후 1975년 1월호부터 쓴 ‘산방한담(山房閑談)’은 1998년 7월호까지 모두 143회에 걸쳐 실렸다.

스님은 70년대 말 연재를 하던 중 잡지에 수록된 자신의 글에서 오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샘터로 전화를 걸어 “다시는 샘터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호통을 쳤다. 샘터의 기자였던 동화작가 정채봉씨는 인쇄기를 멈추라고 지시한 뒤 밤 기차를 타고 스님이 머물고 있는 전남 순천시 송광사 불일암을 찾아가 사죄했다. 하지만 스님은 새벽 상경 기차를 타기 위해 떠나는 정씨에게 ‘박카스’ 한 병을 슬그머니 내밀었고 그제야 그는 마음을 놓고 서울로 올라와 재교정을 봐서 다시 인쇄기를 돌렸다. 정씨는 그 후 스님의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생일을 알아 내복을 선물했고 스님은 크게 고마워했다.

70년대 중반 김형영 샘터 편집장과 호형호제하던 최인호씨는 그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가족을 다룬 연재물을 쓰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김 대표는 “최 선생, 샘터가 없어지거나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연재하시오”라고 말했고 최씨 역시 “삶이 다하는 날까지 ‘가족’을 계속 써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최씨는 1975년 9월호에 연작소설 ‘가족’ 연재를 시작해 이번 6월호로 333회를 맞는다. 이는 월간잡지 사상 최장 연재. ‘가족’을 연재하는 동안 원고지 6000장을 넘게 썼고 ‘나눈 비리 부는 사나이’를 기운차게 부르던 딸 다혜를 키워 시집보냈으며 다혜가 낳은 손녀 정원을 새 가족으로 소개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 맺었던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셈이다.

1981년 6월호에 ‘석류꽃’이라는 시를 실으면서 ‘샘터’와 인연을 맺은 이해인 수녀는 ‘두레박’ ‘시인의 숲 속’ ‘꽃삽’ ‘해인의 뜨락’ 등의 제목으로 1984년부터 올해 3월까지 연재를 했다. 이해인 수녀를 통해 그의 어머니를 비롯해 언니 이인숙 수녀, 오빠 이인구 교수(국민대) 등이 필자로 샘터에 기고하거나 글에서 소개되는 등 온 식구가 샘터 ‘가족’이 됐다.

그동안 ‘샘터’에 연재했던 글은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사랑할 땐 별이 되고’ ‘꽃삽’ ‘고운 새는 어디에 있을까’ 등 단행본으로 묶어졌다. ‘꽃삽’을 냈을 때 시인 구상은 당시 김형영 편집장에게 “(이해인 수녀가 가톨릭 계열 출판사에서 책을 낼텐데) 니놈이 가서 수작을 부렸구나”라며 책 잘 만들었다는 칭찬 겸 야단을 쳤다.

5월 15일 발행되는 샘터 400호에는 피 선생과 김 고문, 법정 스님과 최인호씨가 각각 나눈 대담이 특별기획으로 실린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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