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철교수의 성보고서]‘고개숙인’ 남성이여! 희망은 있다

  • 입력 2003년 4월 13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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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습니까.”

“불편한 곳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

“저…, 음….”

발기부전 환자는 대부분 한참 뜸을 들이다가 자신의 사정에 대해 얘기한다.

환자 대부분은 발기부전이 생겼을 때 남자로서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생각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며, 배우자가 자신을 경멸하며 비웃고 얕본다고 생각한다.

이런 자격지심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거꾸로 부인에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려 하고 매사에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2000∼2001년 한국인 1500명을 비롯해 31개국 2만 여명을 대상으로 성 의식과 실태를 조사한 ‘화이자 글로벌 연구’에도 이런 경향이 여실히 드러났다.

조사결과 한국의 40세 이후 남성 67%가 성기능 장애가 발생하면 배우자와의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며 남성으로서의 자긍심에 상처를 입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42%는 직장 업무에도 지장을 줄 것으로 생각하는 등 중노년층에서도 성기능이 삶의 질에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칫 죽을 수도 있는 환자를 살려 놓았을 때 의사들은 환자의 얼굴에서 고마움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발기부전을 해결한 환자처럼 환희와 희망에 찬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언젠가 30대 후반의 한 남성이 발기부전으로 찾아왔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도를 닦는다며 산에 들어갔다. 스님은 아니지만 머리를 밀었고 승복까지 입었다.

그는 발기부전을 음경보형물 삽입수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문기사를 오려 갖고 찾아와 수술을 요청했다.

필자는 검진 결과 음경이 너무 작아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환자는 실패해도 좋으니 여한이 없도록 한번 시도라도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는 여태까지 온갖 수모와 실의를 경험했으며 자살까지 생각했으므로 실패해도 더 이상 가슴 아파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거듭 부탁했다.

그런데 천운이었을까. 의외로 환자의 조직 신축성이 좋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외래환자를 보고 있는데 양복을 차려입은 환자가 찾아와 인사를 하는데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바로 몇 개월 전 수술을 해준 그 환자였다. 수술 후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그렇게 환하고 희망찬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김세철 중앙대 의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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