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코리안 엔드게임'…한반도 평화 해법

  • 입력 2003년 4월 11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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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엔드게임/셀리그 해리슨 지음 이홍동 외 옮김/581쪽 1만9800원 삼인

북한 핵문제로 불거진 한반도 위기국면이 반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망령처럼 되살아난 핵 문제뿐만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근원적 해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의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셀리그 해리슨이 최근 35년의 취재와 연구활동을 총결산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전쟁의 공식적 종결이야말로 한반도 평화 구축의 첫걸음이라는 평소 지론을 재확인했다. 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그 협정에 한국이 찬성한다면 한반도에서 군사적 적대관계가 종식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해리슨은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탈개입(Disengagement)’을 주장한다. 미국의 성공적 탈개입은 한반도 평화정착을 목표로 삼아야 하며, 한반도의 군사적 중립화와 비핵화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다. 탈개입 프로세스는 이렇다. 첫째로 북-미대화를 통한 관계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 둘째로 남북한 군비감축과 주한미군의 점진적 철수, 마지막으로 안전장치로 주변 4국의 한반도 중립화와 비핵화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폭넓은 한반도 안보 대화를 주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동북아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내다볼 수 있으려면 한반도 주변국간의 각축이 배제되어야 한다.

문제는 역시 주한미군이다. 해리슨은 주한미군은 남북한 평화의 ‘성실한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그의 입장과 다르다. 9일 국방부에서 열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 회의는 50년 동안 지속돼 온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에 대해 합의했다. 공동발표문의 내용은 한반도 안보에서 한국의 역할 증대와 함께 ‘주한미군의 동북아 역내(域內) 안전에 대한 기여 강화’에 초점이 모아졌다. 이는 주한미군의 성격이 북한 남침에 대한 억지 전력 차원에서 동북아 균형자로의 역할 확대를 의미한다.

해리슨은 미국 조야(朝野)에 북한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미국의 편견과 그릇된 대북 인식을 설득하는 몇 안 되는 북한 전문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이방세력에 협력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협상에서 한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그의 논지는 “미국 대외정책의 문제점이 이방세력들과 협력하려 하지 않는 데 있다”는 ‘뉴욕 타임스’ 기자 출신인 리언 시걸의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미국은 핵보유 유혹에 사로잡힌 국가에 그들의 절박한 안보문제와 조건부 호혜주의를 결합한 ‘외교적 상호주의’ 전략을 구사해서 핵보유 시도를 포기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북한 핵문제 대응방식도 마찬가지다. 해리슨은 북한의 핵·미사일 선택권은 최종적으로 미국이 완전한 관계정상화에 나서고 더 이상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할 만한 태세를 취하지 않을 경우에 한해 ‘한꺼번에 최종적으로’ 포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미국의 태도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가운데 경제제재 해제는 북한 개방의 열쇠다.

그러나 한반도의 ‘막판 게임’을 위한 해리슨의 제안은 미국 내 주류 정통파의 세계패권전략에 대한 접근방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들은 한반도의 탈개입을 통해 미국의 국익이 보장될 수 있다고 여길까? 미국이 중동지역과 동북아지역 두 축을 중심으로 21세기 세계전략을 기획하고 있다면 한반도 문제를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의 틀 위에서 조망하는 접근법도 기대된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chomin@kin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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