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한국인의 性]40세이상 28% “월5회이상 성관계”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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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과학적인 조사방법에 따라 밝혀진 지구인의 성의식과 실태에 관한 보고서를 단독 입수해 이 중 한국인 관련 부분을 특집으로 소개한다. 또 매주 월요일에 발행되는 헬스섹션에 이 조사에 참여한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의 김세철(金世哲) 교수가 쓰는 ‘김세철 교수의 성 보고서’를 연재한다. 베일 속에 감춰진 한국인의 성의식과 성실태가 어떤지, 다른 나라와는 어떻게 다른지 등을 조목조목 알아본다.》

중년 이후의 한국인은 세계에서 성생활을 가장 중시하지만 성기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치료받는 비율은 세계 최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성관계를 유지하는 부부는 세계 평균보다 약간 많은 편이지만 횟수는 현격히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미국계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의 후원으로 2000∼2001년 조사가 실시돼 2년간의 분석끝에 나온 세계 각국 40∼80세 남녀의 성에 대한 태도와 행동에 관한 ‘화이자 글로벌 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말 따로, 실천 따로=조사 대상 한국인의 89%(남성 96%, 여성 82%)가 “섹스가 생활에서 중요하다”고 응답해 세계 평균 73%(남성 83%, 여성 63%)보다 월등히 높았다. 일본의 53%(남성 64%, 여성 41%)에 비해서는 2배 가까이 높았다.

또 1년 동안 한 번 이상 성관계를 갖는 사람은 80.9%(남성 90.6%, 여성 71.2%)로 세계 평균 74.5%(남성 83.1%, 여성 65.9%)보다 다소 높았다.

그러나 성에 대한 높은 관심과는 달리 실제 성관계 횟수는 세계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월 1∼4회 성관계를 갖는 비율은 59.4%로 세계 평균 44.7%보다 높았지만 월 5회 이상은 27.7%로 세계 평균(40.5%)보다 훨씬 낮았다. 특히 매일 한번 이상 섹스를 한다는 응답자는 단 한 명도 없어 스페인(10%) 벨기에(3%) 등과 비교됐다.

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성관계에 소극적인 태도는 ‘최소한의 성관계만 유지하면 의무를 다했다’고 여기는 한국인의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김 교수는 분석했다.

▽방치된 성기능 장애=‘지난 1년 사이에 2개월 이상 성기능 장애가 지속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남성 42%, 여성 47%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는 세계 평균(남성 39%, 여성 44%)보다 다소 높은 것.

남성 중 발기부전과 연관이 있는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은 각각 30%, 35%로 세계 평균(11%, 25%)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치료받는 비율은 2%(세계 평균 18.8%)로 꼴찌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 남성은 치료는 받지 않으면서 성기능 장애로 인한 가슴앓이는 심하게 한다는 것. 섹스가 안될 때 ‘자존심이 상처받는다’는 응답은 남성 68.2%로 세계 평균 57%를 훨씬 상회했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악화된다’는 응답도 남성 67.2%, 여성 49.2%(세계 평균은 각각 44%, 43%)를 기록했다. 특히 ‘일에 지장이 있다’는 응답이 남성 41.9%, 여성 27%(세계 평균은 각각 15%, 12%)나 돼 성기능 장애가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됐다.

성기능 장애를 부끄러워하면서도 병원 찾기를 꺼리는 한국인의 행동은 발기부전 치료제의 암시장이 성행하고 이른바 ‘정력식품’이 기승을 부리는 한국적 상황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너를 위한 성=한국인은 주로 배우자를 위해서, 다음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성관계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왜 성관계를 하는가’라는 질문(중복 응답 가능)에 89%가 ‘배우자에 대해 애정을 표시하고 육체적 정신적 친밀감을 갖기 위해’, 87%가 ‘배우자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81%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또 77%는 ‘자신의 성적 만족을 성취하기 위해’, 72.7%는 ‘부부싸움을 한 뒤 화해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여성계 일각에서 부부싸움 후 화해를 위한 성생활을 ‘남편에 의한 성폭력’으로 규정하지만 ‘부부싸움 후 화해하기 위해서 성관계를 갖는다’고 응답한 여성이 72.9%로 남성 72.5%보다 오히려 많은 것으로 나타나 이채롭다.

▽성에 대한 진실=‘혼외 정사를 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에 한국은 남성 34.1%, 여성 18.9%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세계 평균(남성 61%, 여성 51%)보다 월등히 낮았다. 외도에 대해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6.3%, 여성 1.2%가 일회성 외도를 제외한 성생활 파트너가 2명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이탈리아(11%, 6%) 프랑스(8%, 2%) 독일(7%, 2%)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미국(5%, 1%) 호주(5%, 1%) 일본(4%, 2%) 영국(4%, 1%)보다는 높아서 주목된다.

서구와 달리 비교적 이혼율이 낮고 혼외정사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40대 이후에서 성 파트너가 2명 이상인 비율이 비교적 높게 나온 것은 한국인의 이중적 성 행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 60세만 되면 성생활을 피할 것이라는 일반인의 인식과 달리 60세 이상의 76%가 성이 중요하다고 여겼으며 47%는 실제 성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40, 50대의 성관계 비율은 93%로 나타났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보고서 어떻게 만들었나▼

화이자 글로벌 연구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31개국 40∼80세 남녀 2만7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성행동, 성에 대한 태도 및 믿음, 성관계의 만족도 등 155개 항목에 대해 동시에 조사한 것으로 이 같은 동시 조사는 세계 최초다.

성에 대한 설문조사는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주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설문 항목의 작성과 분석이 매우 어렵다. 비교 연구를 위해 전 세계에서 동시에 이런 조사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어서 조사와 분석에 각각 2년씩이나 걸렸다.

국내에서는 전국적으로 수만 명과 접촉해 이 중 3812명을 상대로 설문을 시작했지만 끝까지 설문을 마친 사람은 1200명뿐이었다. 끝까지 설문에 응답하면 상당한 액수의 수고료를 지급한다고 일러줬지만 3분의2 이상이 중간에 포기했다. 성에 대한 한국인의 보수성을 짐작케 해준다. 설문의 개발과 분석에는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비뇨기과 전문의, 역학자, 사회심리학자, 성치료사 등 12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김세철 교수가 참여했다. 국내에서 이처럼 방대한 항목에 걸쳐 성 실태 설문조사가 이뤄진 것도 처음이어서 이번 연구 보고서는 ‘한국판 킨지 보고서’라 할 만하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17개국은 전화조사, 일본은 자가응답식 우편조사를 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13개국은 면접조사를 하는 등 각국의 특성에 맞게 조사방법을 다르게 했다.

▼설문조사 김세철교수▼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섹스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나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화이자 글로벌 연구’의 국내 책임자였던 중앙대 용산병원 비뇨기과 김세철(金世哲·57·사진) 교수는 “특히 60세 이상 노인의 76%가 섹스가 중요하다고 응답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며 “노인층의 성에 대한 관심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면서 노인들의 ‘삶의 질’, 특히 성생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그는 “성기능 장애가 있어도 병원을 찾지 않는 게 한국인의 일반적인 특성인데 이번 조사에서도 이런 현상이 그대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는 수명이 길어지고 환경이 풍요로워지면서 성생활을 유지하는 노인이 늘고 있지만 아직 성 인식은 보수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성 문제 해결을 꺼리는 모습은 환자뿐 아니라 의사도 마찬가지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이 조사에서 ‘지난 3년 사이에 의사로부터 성적 문제가 있는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은 4%만이 ‘그렇다’고 응답해 미국인 14%, 독일인 11%에 비해 크게 낮았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의 연령을 분석한 결과 1985∼1994년에는 30대, 20대, 40대, 50대, 60대순으로 많았지만 2001년에는 50대, 60대, 40대, 30대, 70대순으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노인의 성 역시 젊은이의 성과 마찬가지로 쾌락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60대 초반의 한 남성이 재혼을 앞두고 발기부전을 치료하러 왔습니다. 그는 이전에 2명의 여성을 사귀었지만 발기부전 때문에 모두 도망갔다고 합니다. 두 여성이 특별히 섹스를 밝혀서가 아니라 섹스가 없으면 서로 친밀감을 강화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거죠.”

:김세철 교수: 경북고, 경북대 의대 졸. 중앙대 용산병원장, 대한남성과학회장, 대한불임학회장 등을 역임. 차기 대한비뇨기과학회 이사장으로 예정돼 있으며 2005년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남성과학회의 조직위원장 및 학술대회장을 맡고 있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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