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이모작]기술직 공무원서 글쓰기 교수로…임재춘씨

  • 입력 2003년 3월 23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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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출신이 사회에서 푸대접받는다고 불만이지만 글쓰기 실력이나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기술직 공무원 출신인 임재춘(林載春·55·서울 성동구 옥수동·사진)씨는 ‘글’에 한(恨)이 맺혔다. 영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기술고등고시에 합격해 ‘출세’하던 임씨는 과학기술부 원자력국장으로 근무하던 중 1991년 장관에게 비문(非文)투성이의 보고서를 제출했다가 26년 동안 근무했던 과학기술부를 그만두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당시 방사성폐기물 매립장 선정 문제로 정부가 상당히 민감한 때였어요. 해당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신문광고 문안을 작성해야 했습니다. 제가 그 일을 맡아 당시 언론인 출신 장관에게 제출했는데 글을 본 장관이 벼락같이 화를 냈어요. 문장에 주어조차 없는 엉터리였음을 나중에서야 알았지요.”

이때부터 임씨는 ‘글쓰기’에 도전했다. 과학기술부를 그만둔 뒤 영국의 한 대학에서 MBA 과정을 공부하던 그는 과학기술자를 위한 글쓰기 강좌인 ‘테크니컬 라이팅(기술 글쓰기)’을 접했다.

“감(感)이 오더군요. 공식이나 계산에 익숙한 과학기술자에게 글쓰기 부담은 엄청나거든요. 생각을 바꾸니 글쓰기 세계가 열리는 듯했어요. 이공계 대학생이나 과학기술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문학적 글쓰기가 아닌 사무적인 글쓰기이기 때문이지요. 약도(略圖)를 그리듯 중요한 사실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는 산업자원부가 이공계 대학생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0년 도입한 ‘공학교육인증제’에 따라 이때부터 영남대 공대에 객원교수로 부임했다. 임 교수의 과목은 ‘의사소통기술’. ‘약도를 그린다고 생각하라’는 그의 글쓰기 원리는 공대생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그의 강의를 들은 공대생들은 교수 평가에서 5점 만점에 4.8점이라는 최고 점수를 그에게 주었다.

“미국에서 성공한 기술자 4000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능력은 전공보다는 경영학, 테크니컬 라이팅, 창의, 인화, 대화 같은 분야가 50%가량이었습니다. 시사하는 게 크죠. 제안서, 보고서, 기획서, 투자유치서, 제품설명서 등 ‘글’로 자신을 나타내야 할 부분이 굉장히 많아요. 과학기술자가 새로운 개발을 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그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술 글쓰기 사이트(www.tec-writing.com)를 3년째 운영하고 있는 그는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정리해 최근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는 책을 펴냈다. ‘글을 못 써 쫓겨난’ 사람이 쓴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간결하게(170쪽) 글쓰기에 대해 ‘썼다’.

“한국의 이공계 대학생들이 글쓰기 능력까지 갖춰 몸값을 올리는 날이 올 때까지 기술 글쓰기에 매달릴 겁니다. 글을 잘 쓰는 기술자가 성공한다고 확신합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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