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지킴이]연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 인요한소장

  • 입력 2003년 3월 23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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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에서 인요한 소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외국인 환자가 오면 진료비를 깎아주는 등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에서 인요한 소장이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그는 가난한 외국인 환자가 오면 진료비를 깎아주는 등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고 다람쥐 잡던 어린 시절….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의 인요한 소장(44)은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 한국인 친구들과 뛰놀던 기억이 밀려와 흐뭇해진다.

미국 국적에 눈동자가 파란 백인이지만 그는 여느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동네에서 벗들과 함께 감 따기에 수박 서리, 들불놀이를 하며 놀았고 이런 추억 속의 모습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어릴 적의 기억과 똑같은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는 1995년부터 북한을 돕는 운동을 펼치면서 매년 북한을 2, 3차례 방문하고 있다. 그는 북한의 15개 결핵 병원과 65개 요양소에서 의료용품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 소장은 외조부로부터 4대째 한국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미국인 의사다.

외할아버지 유진 벨은 1895년 한국에 온 남장로교 선교사. 그는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한 자루밖에 없는 권총을 인계하면서 일본 자객으로부터 고종을 지켰다. 그는 목포 양동교회를 비롯해서 20여개의 교회를 세웠으며 목포 정명여학교, 광주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등을 만들었다.

인 소장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린튼 역시 선교사로 신흥학교, 기전여학교의 교장을 지냈으며 지금의 한남대인 대전대를 설립했다. 그는 1922년 유진 벨의 딸인 샤로트를 만나 결혼했다. 샤로트는 기전여학교에서 한복을 입고 영어, 프랑스어, 성경 등을 가르쳤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성 린튼의 ‘린’에서 한국 성(姓) ‘인(印)’을 만들었으며 신사참배를 거부해 일제로부터 강제 추방당했다가 광복 직후 다시 한국에 왔다.

아버지 휴 린튼은 전남의 섬들과 벽지를 돌아다니며 선교활동을 했으며 64년 부인 로이스 린튼과 함께 순천기독결핵재활원을 설립했다.

인 소장은 휴 린튼의 5남1녀 중 넷째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전공의 과정을 수련했으며 현재 대학병원 교수로서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연세대 의대에서 학생들에게 ‘의학영어’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응급실에 외국인 환자가 들어오면 어김없이 그를 부르기 때문에 한 주 한번씩은 밤마다 병원으로 뛰어오기도 한다. 그는 언제든지 병원에서 호출만 하면 뛰어오기 위해 부인인 치과의사 이지나씨(41), 1남2녀와 함께 병원 부근인 연희동에 살고 있다.

그는 가정과 전문의로서 외국인 환자가 어느 과로 가야 하는지 ‘판결사’ 역할도 하며 회진을 돌며 외국인 환자의 애로를 살피기도 한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저는 시다바리, 해결사입니다”라고 말한다.

인 소장은 무엇보다 남한에서는 응급의학, 북한에서는 결핵 치료의 두 분야에서 커다란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인 소장은 84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별세하자 응급의학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아버지는 요양소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택시 뒷자리에서 병원을 전전하다 숨졌습니다. 당시에는 응급조치라는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인 소장은 93년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해서 순천소방서에 기증했고 이때부터 3000여명의 소방대원에게 응급구조법을 가르쳤다.

“응급의료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투자가 시급합니다. 소방 인구는 최소 4만명이 필요하지만 2만2000명밖에 안됩니다. 또 현재 앰뷸런스 1300대가 매년 100만건의 사고를 처리하는데 최소 3000대가 필요합니다.”

그는 외조부가 한국에 온 지 100주년이었던 1995년 둘째 형 스티븐 린튼(53)과 ‘유진 벨 재단’을 만들고 북한돕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진 벨 재단은 97년까지 식량 지원에, 그 이후에는 결핵 환자를 진료하기 위한 현미경 X레이장비 검진차 등을 지원하고 있다.

97년 북한에 간 형 스티븐 린튼이 어릴 적 앓았던 결핵에 다시 걸렸을 때 온 가족이 북한 결핵 퇴치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북한 보건성 큰물피해대책위원회측을 통해 지원에 나섰다.

어머니 로이스 린튼 여사는 평양적십자병원에 인 소장이 개발한 한국형 앰뷸런스를 기증했다. 모금 운동과 의료 지원 활동의 핵심은 마당발에 의대 교수인 인 소장의 몫이었다. 유진 벨 재단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만해평화상과 운경상을 받았다.

“유진 벨 재단은 어디까지나 누군가를 돕고 싶어하는 사람의 손길을 올바른 곳으로 인도하는 당나귀일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지원한 250억원으로 북한의 민간인 12만 여명을 살렸습니다.”

그는 북한 방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지상에 양떼가 있다면 북한 주민이 아닐까요.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잃어버렸던 것들을 북한은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요. 겨울 농촌에서는 아이들이 깡통을 돌리며 불놀이하는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 북한의 아가씨들은 수줍음을 많이 타죠. 백인인 제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가씨들이 멀찌감치 숨어서 저를 보고 키득거리며 웃다가 제가 뭐라고 소리치면 볼우물 주위를 붉히면서 도망을 갑니다. 70년대 한국이 그랬지 않습니까.”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한국인에 말하고 싶은 세가지▼

한국인은 약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약은 필요악이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먹지 않는 것이 좋고 보신하는 효과는 없다. 세 끼 골고루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한국은 의사와 환자가 대화하는 시간과 공간이 없다. 미국에서는 의사가 하루에 10∼20명의 환자만 진료하면 되기 때문에 인간적인 대화를 통해 서로의 믿음을 나눈다. 한국에선 의사가 하루에 100여명을 보기 때문에 오진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료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아울러 건강보험을 개선해 감기, 설사 등은 제외하고 뇌중풍이나 암 등에 대한 수혜 폭을 늘려야 한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1주일 만에 낫고 약을 먹지 않으면 7일 지나야 낫는다는 우스개 얘기도 있다. 대부분은 보험 항목에서 제외시켜도 괜찮다.

대신 여기에서 생긴 돈으로 큰 병에 걸려 집안 살림이 무너지는 현실을 고쳐야 한다. 건강보험 등 의료시스템은 개혁이나 혁명으로 뜯어고치기보다는 사회 현실에 맞게 고쳐나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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