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540>內 閣(내각)

  • 입력 2003년 3월 4일 17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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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 閣(내각)

閣-집 각 肖-닮을 초 微-미미할 미

賤-천할 천 顧-돌아볼 고 寵-사랑할 총

‘개천에서 龍(용)났다’. 어려운 환경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하여 훌륭한 인물이 된 경우에 하는 말이다. 일전에도 설명한 바 있듯 중국 明太祖(명태조) 朱元璋(주원장)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그는 風雲兒(풍운아)와도 같은 인물이다. 떠돌이 소작인의 막내로 태어났지만 돌림병으로 가족이 몰사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면서 거지신세로 전락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은 형편없이 얽은 곰보였다. 그래서 그의 肖像畵(초상화)를 보면 흉칙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중국에서 그토록 微賤(미천)한 자가 天子가 된 경우는 일찌기 없었다. 대체로 武將(무장)출신이 革命(혁명)을 통해 나라를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무 배경도 없는, 그것도 일개 거지로서 天子가 된 예는 前無後無(전무후무)했던 것이다.

天子가 된 그는 대뜸 종전의 宰相制(재상제)를 폐지하고 六部를 두어 직접 命을 下達(하달)함으로써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樹立(수립)했다. 하지만 微賤했던지라 아는 게 없어 國政(국정)의 顧問(고문)을 두어 武英殿(무영전)이니 文淵閣(문연각)과 같은 殿閣(전각)을 지어 거처케 하고는 가끔 大內(천자의 궁전)에서 잔치나 베풀어주는 정도였다. 물론 宰相과 흡사한 역할이었지만 宰相이라는 말을 의식적으로 싫어했으므로 그렇게 부를 수는 없었다.뭐 좋은 이름이 없을까 생각한 끝에 妙案(묘안)이 떠올랐다. 國政의 顧問들과는 늘 ‘大內’ 아니면 ‘殿閣’에서 만나지 않는가. 그래서 각각 한 자씩 따와 ‘內閣’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內閣은 본디 정식 관청도 아니었을 뿐더러 일정한 직급도 주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임시직 公務員(공무원)이었던 것이 후에 천자를 가까이 모시는 데다 일부 內閣이 寵愛(총애)를 받아 출세를 하게 되면서부터 관청이 주어지게 되었고 또 六部의 長官을 능가하는 권력을 누리는 자도 나오게 되었다. 이 때부터 內閣이라면 권력의 핵심기구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 뒤 이 제도는 淸나라에 와서 폐지되었다가 말기 때에 부활하여 행정의 최고기구로 되었으며 그 우두머리를 總理大臣(총리대신), 各部의 長을 國家大臣이라고 했다.

현재 內閣이라면 각 부처를 총괄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옛날 중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다만 總理大臣은 國務總理(국무총리), 國家大臣은 長官(장관)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 內閣의 長官을 임명하는 것이 組閣(조각), 교체하는 것이 改閣(개각)이다.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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