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충돌' 펴낸 이종욱교수 "국사교과서 고대사 왜곡됐다"

  • 입력 2003년 3월 2일 19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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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대기자
박영대기자
“삼한 사회에서 천군이 소도의 의례를 주관했다는 국사 교과서의 내용은 허구입니다. 사료 어느 곳에도 이런 근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중·고교시절 ‘교과서 중심’으로 착실하게 국사 수업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종욱(57·서강대 사학과·사진) 교수의 주장이 ‘파격’으로 느껴질 만하다. 그는 최근 펴낸 ‘역사충돌(김영사)’에서 국사 교과서에 서술된 고대사를 ‘왜곡된 역사’라며 잘못된 부분을 조목 조목 따져나갔다.

이교수는 우선 교과서에 나오는 ‘천군과 소도’의 이야기로 글을 열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병도 선생이 ‘천군이 소도를 주관했다’고 설명한 것은 사료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학계는 선행자의 연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잘못된 관행을 이어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그는 “건국 신화를 역사 연구에 포함시켜야 한다”거나 “위만은 조선인이 아닌 연(燕)나라 사람이었다”라는 등의 주장을 펼친다. 하나같이 기존의 ‘통설’을 깨는 것들이다.

이 교수는 “지난 100년간 한국 역사학계는 일제로부터 ‘미끼치기(사기)’ 당한 연구 방법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를 기술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일본 사학자 쓰다 소우키치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기 위해 ‘삼국사기’ 신라 본기의 기록을 부정하고 중국의 ‘삼국지’를 기본 사료로 삼았습니다. 이 때문에 4∼5세기 이전 백제와 신라의 역사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대사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교수는 백제의 왕성으로 여겨지는 풍납토성을 예로 들었다. 2000년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 풍납토성의 연대측정 결과는 기원전 2세기부터 2세기까지. 백제가 3세기 고이왕 때에야 비로소 고대 국가를 세웠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왜곡된 고대사를 제대로 해석하려면 “고대인의 시각에서 그들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민족사가 만들어낸 잣대, 국수주의적 잣대로는 고대의 역사를 읽을 수는 없다는 것. 때문에 “발해의 역사를 한국사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명백한 역사 정복의 외침”이라고 일갈했다.

“발해사는 한국 역사에 편입시켜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한국이 현재 그 땅을 지배하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말갈족의 역사인 발해사를 한국 역사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다면 역사적인 침략 행위인 것이지요.”

이 교수는 인류학, 고고학 등 관련 학문의 이론과 체계를 도입해 사료를 포괄적이고 구조적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역사’를 제안한다. 역사를 상상력으로 해석한다는 기존 학계의 비판에 대해 그는 “기존의 역사 체계와 내가 주장하는 ‘새로운 역사’는 패러다임 자체가 다르다”며 “마치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처럼 사료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이 책이 “지난해 펴낸 ‘신라의 역사(김영사)’에 대한 변론”이라고 말했다. “기존 역사관과는 다른 관점에서 고대사를 연구해 책을 펴냈는데, 그 책이 중·고교 교과서와는 너무 다르다는 점을 해명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 아울러 그는 “지난 100년간 한국 역사학계를 지배해온 ‘통설’의 축적물인 국사 교과서를 비판해 우리 학계에 자리잡고 있는 ‘학문 권력’에 항거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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