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고교생 르브론 "농구황제 경쟁 끝내주마"

  • 입력 2003년 2월 27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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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뉴저지주 트렌턴에서 열린 고교농구 경기가 TV로 중계됐다. 오하이오주 아크론의 세인트 빈센트 세인트 메어리(SVSM) 고교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웨스트체스터 고교간의 경기였다. 토너먼트 결승전도 아니었고 시즌 마지막 경기도 아니었는데 TV 카메라는 왜 동원됐을까. 르브론 제임스(18)가 뛰었기 때문이었다.

SVSM의 졸업반인 르브론은 이날 무려 52득점으로 자신의 종전 최고기록(50점)을 경신했다. 78-52로 SVSM의 가벼운 승리였다. 국내외 프로농구 관계자들이 지켜본 이 경기에서 르브론은 34개의 필드슛 중 3점슛 6개를 포함해 21개를 성공시켰다. 버스로 7시간 걸려 응원온 고향 팬 110명 앞에서 마이클 조던과 같은 등번호 23번의 르브론은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경기 전에 느낌이 오더군요. 농구 코트는 내 집같아요.”

르브론은 올해 NBA 드래프트 1순위에 오를 것으로 확실시되고 있다. NBA 선수는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고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지난해 진출을 포기했다. 만일 지난해 드래프트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면 현재 NBA 무대에서 활약중인 중국계 야오밍에 앞서 르브론이 1순위로 지명됐을 것이란 이야기도 있다. NBA는 내년 미국 올림픽 팀에 그를 포함시킬 예정이라는 기사도 나왔다.

르브론에 대해 전문가들은 “타고난 신체적 정신적 강점과 이기적이지 않은 태도, 시력과 패스기술, 코트감각이 최고”라고 극찬한다. 리바운드 감각과 공을 나꿔채는 능력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림 위까지 치솟는 그의 점프는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한다. 다만 성공률 60% 수준인 프리스로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고 장거리에 비해 약한 중거리 슛을 다듬어야 하며 수비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이 따라 붙는다. 어떤 이들은 르브론이 ‘정상의 고독감’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16일 데이튼대학의 1만3000여 관중 앞에서 벌어진 케터링 알터 고교와의 경기. 상대팀 응원석에서는 “오-버-레이팃”(o-ver-rated, 과대평가라는 뜻)이라는 구호가 터져나왔다. 냉정한 르브론은 코비 브라이언트의 원핸드 토마호크 덩크 등 5개의 화려한 덩크로 응답했다. 르브론은 평균 33득점을 훨씬 밑도는 22득점에 그쳤지만 그의 팀은 70-43으로 싱거운 승리. 르브론은 이날 받은 MVP 트로피를 “나보다 더 잘 뛰었다”면서 동료 코리 존스에게 선물했다.

르브론은 “대학에 가지 않고 바로 프로로 뛰기로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고 말한다. 고교 1위라는 평가의 여세를 몰아 곧바로 프로무대에서 기량을 뽐내보겠다는 생각이다. 르브론은 이미 프로 스타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아크론의 방 2개짜리 아파트에 사는 그는 벽에 농구선수들 사진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MJ(마이클 조던) 사진은 50장쯤 되고요.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래디, 매직 존슨, 코비 브라이언트도 있지요. 내 사진도 있어요. 내 방에 나를 붙여놓았죠.”

8학년(중2) 때 그의 키는 1m83이었다. 그의 우상인 조던은 1m98. 르브론은 ‘언제 1m98이 되나’ 조바심을 냈고 키를 잴 때면 까치발을 했다. 그러다가 10학년(고1) 때 ‘어느날 갑자기’ 1m98이 넘었다. 그러자 그는 “이젠 됐다”며 더 이상 키를 재지 않았다. 지금 그의 키나 몸무게 정보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2m3쯤에 109㎏쯤 나가지 않을까 추측할 뿐.

미국 스포츠 잡지는 르브론을 ‘차기(次期)’ 또는 ‘킹’으로 부른다. 조던에 이어 프로농구의 황제로 군림할 자질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조던은 1년반 전 그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작년 여름 르브론이 덩크를 하고 떨어져 왼쪽 손목을 다치자 조던은 정형외과 주치의와 개인 트레이너를 소개해 치료를 해주었다. 르브론은 그 뒤 펄펄 날았다. “오늘이 농구를 하는 마지막날일 수도 있다는 각오로 뛴다”고 그는 말했다.

르브론은, 많은 스포츠 스타가 그렇듯, 가정이 매우 불안정하다. 어머니 글로리아 마리 제임스는 16세에 그를 임신했다. 어려서 수없이 이사를 다녔다. 밥먹듯이 결석을 했다. 르브론이 처음 접한 운동은 미식축구로 6게임에서 19차례의 터치다운을 기록하기도 했을 정도로 잘했다. 초등학교 4학년 크리스마스 직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 르브론을 프랭키 워커 미식축구팀 감독이 찾아내 자신의 집에 데려다 키웠다. 어머니와는 매 주말 만나게 배려했다. 르브론은 5학년 때 처음으로 개근상을 받았고 이어 농구팀의 보배로 활약하게 된다.

르브론이 코트에서 이름을 날리고 돈벌이 가능성이 보이자 새 남자친구(르브론은 요즘 그에게 재정관리를 맡기고 ‘아빠’라고 부른다)와 함께 르브론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본다. 그녀는 ‘르브론 엄마’라고 쓴 운동복을 입고 나타나 악을 써 가며 아들을 응원한다. 올해 초 그녀는 아들에게 군용차량처럼 생긴 5만달러짜리 SUV 훔머를 사줬다가 모자가 함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요즘 르브론 군기는 농구팀 감독 드루 조이스 2세가 잡는다. 르브론이 욕을 하다가 그에게 걸리면 그 자리에서 푸시업 10번이다. 조이스 감독은 “코비도 프로 진출해서 적응하는 데 3년이 걸렸다”면서 르브론이 프로무대에서 잘 뛰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교 때 전국 1위였다가 프로무대에서 이름도 없이 사라진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라는 경고를 빼놓지 않는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이 옷이나 신발 등을 무더기로 가져다주며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아이버슨이나 코비보다 검색빈도가 더 높은 르브론. ‘농구 IQ’가 매우 높으면서도 이기적이지 않아 패스를 특히 잘 한다는 르브론은 이런 우려에 이렇게 대꾸한다. “나는 슈퍼히어로입니다. 나를 농구인간(Basketball Man)이라고 불러주세요.”

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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