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유목민' 홍사종 마흔여덟의 새 도전

  • 입력 2003년 2월 25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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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아이디어맨으로 불리는 홍사종씨가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제공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문화계 아이디어맨으로 불리는 홍사종씨가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진제공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학교는 왜 그만두셨어요?”

“배는 항구에 있으면 가장 안전하지만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잖아요. 무슨 일이든 오래 하면 정체할 위험도 있고…. 저는 안주하는 것보다 늘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는 게 체질에도 맞는 것 같아요.”

숙명여대 교수에서 최근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자리를 옮긴 홍사종씨(48)는 요즘 사람들과 만날 때면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 한다.

홍 관장은 우리 문화계에서 ‘탁월한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아이디어맨. 세종문화회관 운영과장 등을 거쳐 96년부터 4년 동안 정동극장장으로 일하면서 ‘맞춤공연’ ‘점심공연’ 등 기발한 아이디어로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 공공부문 경영혁신 우수사례로 뽑혀 국무회의에서 발표도 했던 그는 그해 극장장을 그만두고 교수로 변신하더니 이번에 다시 지방문예회관의 운영 책임을 맡았다.

“문화와 복지, 문화와 교육, 문화창달 등 세 가지 키워드를 바탕으로 극장을 운영해 나갈 생각입니다. 먼저 ‘문화의 모세혈관 운동’을 펼쳐서 실핏줄이 온 몸으로 산소를 실어 나르듯 읍 면 동에까지 골고루 문화의 향기를 퍼뜨릴 계획입니다. 또 학교 및 사회교육과 연결해 극장을 활성화하고, 좋은 작품과 우수한 레퍼토리를 개발해 수준 높은 공연장으로 키워 나가야죠.”

건물만 덩그렇게 지어놓고 관객을 기다리는 지방문예회관에서 벗어나 시골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사람들의 중심에 서 있는 극장으로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다. 첫 사업으로는 ‘OOO과 함께 하는 음악회’를 구상 중이다. 출향 인사들의 지원을 받아 어린 시절 자신을 키워주었던 고향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는 뜻. 폐교 등을 활용해 작은 마을의 어린이들까지도 공연을 접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관장을 맡은 뒤 알아보니 대극장과 소극장, 야외음악당 등 회관의 전체 면적은 세종문화회관보다 큰데, 공간활용률은 20% 미만이더군요. 공적 지원을 받는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과 공간의 생산성이 너무 낮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초중고교의 특활프로그램과 연계하는 한편 갈 곳도, 놀 곳도 없는 노인들을 위해 낮시간 리허설 등을 싸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할겁니다.”

문화마케팅의 명강사로 소문이 나면서 대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은 그가 관장직을 수락한 데는 ‘경기도 토박이’로 더 늦기 전에 고향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작용했다. 남양 홍씨인 홍 관장은 고향(경기 화성시)에 할아버지부터 3대가 태어나 살아온 시골집을 잘 보존하면서 수시로 들락거릴 정도로 인연을 맺고 있다.

“지방분권이란 말이 나오지만 먼저 문화분권이 이뤄져야 합니다. 지역민이 정체성을 찾고, 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하려면 교육과 문화가 달라져야 하니까요. 회관이 있는 수원만의 폐쇄적인 문화활동에 집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 등 경기도 안에 있는 기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 도민 전체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개발할 겁니다.”

그동안 ‘잘 나가는 강사’로 구축해온 기업 인맥도 최대한 활용해 기업인들을 문화발전의 후원자로 유도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관장이 시시콜콜 알아서 밑에 있는 직원들이 괴롭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물어보자 그는 “독선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직원들과의 대화를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공공의 이익과 가치창출을 위해 지방문예회관에 적극적인 경영전략 개념을 도입하겠다는 홍 관장의 도전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연 “경기도문화예술회관만큼만 하면 된다”는 말이 나오도록 그의 실험이 성공할지 궁금해진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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