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무대뒤 일화 담은 '20년사' 출간

  • 입력 2003년 1월 28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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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아멜링 / 지휘자 마젤
소프라노 아멜링 / 지휘자 마젤
1985년 내한한 세계적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 “입국할 때 공항에서 현금으로 개런티를 주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 버리겠다”는 믿기 힘든 조건을 달았다. 공항에서 관계자가 수표를 건네주었으나 아멜링은 “수표는 믿지 못하겠다”고 버텼다.

관계자는 결국 개런티 1만2000달러를 전부 현찰로 바꾸어 커다란 봉투에 넣어주었다. 돈을 받은 아멜링은 “덕수궁에서 노래연습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결국 무릎까지 눈에 빠지는 날 그를 덕수궁에 내려주었다. 한국 가곡을 불러달라고 미리 악보를 보냈지만 다시 악보를 구해주지 않으면 노래를 못하겠다고 막무가내였다.

그래도 공연만큼은 최고였다. 특히 중간휴식 직전 부른 한국 가곡은 누구나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사단법인 한국공연예술매니지먼트협회가 창립 20주년(2002년)을 기념해 최근 내놓은 ‘한국공연예술매니지먼트협회 20년사’에 실린 송희영 한국무지카 대표의 회고다.

이 책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장에는 이처럼 무대 뒤의 흥미로운 일화와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이 실려 시선을 끈다.

박희정 서울예술기획 대표의 회고. “십수년 전 세계적 지휘자 로린 마젤의 내한연주 때였다. 그가 갑자기 지휘를 멈추고 천장 쪽을 바라보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조명실에서 두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 것이다. 연주는 다시 계속됐지만, 내내 불쾌한 표정을 짓던 마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 공연기획계의 대부로 불리던 고 김용현 공연예술매니지먼트협회 초대회장의 회상도 눈길을 끈다. “1975년 광복 30주년 기념음악제가 국립극장에서 열렸다. 한여름이어서 양철 가건물에 있던 음악제 사무실은 한마디로 찜통이었다. 하루는 점잖은 아주머니 한 분이 엄청난 양의 아이스크림을 가져와 손수 나누어주었다. 알고 보니 오늘날 한국 바이올린계의 우뚝한 존재인 김남윤씨의 어머니였다. 아이스크림 잔치는 여러 번 계속되었다.”

협회 회장인 강석흥 한국문화경제학회 부회장은 ‘연주자의 예절’과 관련한 일화를 들려준다. “세계적 첼리스트인 피에르 푸르니에가 80년대 초 내한공연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 교향악단과 협연을 끝낸 그는 연주자 대기실로 들어가지 않고 무대 바깥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무대쪽 문을 반쯤 열어놓고 40여분이나 걸리는 교향곡을 끝까지 경청하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한 이 노연주가가 동료 음악가들에게 보내는 경의 표시는 숭고하기까지 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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