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양의 '대인관계 성공학']완벽주의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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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아아! 이런, 세상에 맙소사!”

어느날 아침, 신문을 보고 있던 김 부장은 신음하듯 비명을 질렀다. 엽기적인 기사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자기 자신을 향한 부르짖음이었다.

그는 정보광이었다. 집에서만 세 종류의 신문을 구독했다. 정기구독을 하는 잡지도 여럿이었다. 관심분야도 다양해, 영화관련 잡지부터 시작해 과학잡지까지 구독했다. 인터넷 검색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집에선 틈만 나면 뭔가를 읽고 들여다보느라 늘 시간이 모자랐다. 아내는 그를 ‘오만데기’라고 불렀다.그가 오만 데 다 신경을 쓰며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회사에서도 그는 하다못해 부서에서 돌리는 회람도 글자 한 자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남들은 진저리를 내는 스팸메일까지 챙겨 읽을 정도이니 알 만했다. 그는 신문을 볼 때도 자잘한 광고까지 다 읽는 게 아주 버릇이 된 사람이었다.

문제의 그날 아침, 그는 정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신문을 대충대충 넘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앞면에 혹시 보지 못하고 넘어간 기사가 있나 해서 다시 보는 짓을 반복하느라 오히려 시간을 배로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 문득 비명이 나온 거였다.

“병이죠? 병일 거예요. 저도 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안 하면 견딜 수가 없는 걸 어떡합니까? 뭔가 중요한 걸 나 혼자만 놓칠까봐 너무 불안하거든요.”

문제는 그의 완벽주의 성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성격적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자기가 모르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크게 느낀다. 이런 타입은 자기가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자칫 하나라도 소홀히 하게 된다면, 그것 자체가 치명적인 약점으로 여겨져 견디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 보기엔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타입은 먼저 자기의 완벽주의 성향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거기서 벗어나기 위한 치료방법도 찾을 수 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때론 유쾌한 경험이란 걸 깨달을 필요도 있다. 한계를 인정하고 나면 완벽주의에서 오는 불안감과 죄책감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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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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