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가족]"우리 애만 뒤처질까봐 소신교육 포기"

  • 입력 2003년 1월 21일 16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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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늦잠을 즐기고 있어야 할 초등학교 6학년 우리 집 큰아이, 아침이면 도시락가방 챙겨들고 나가기 바쁘다. ‘초등학생이 방학중에 웬 도시락?’ 하고 반문한다면, 당신 집엔 예비중학생이 없다.

우리 큰아이는 일주일에 사흘 도시락을 들고 학원에 간다. 중고교생 형들과 마찬가지로 국어 영어 수학 등의 중학과정 예습수업이 오후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나 극성엄마? 아니다. 가능한 한 학원이나 학습지를 ‘무시’하며 ‘줏대 있는’ 교육을 하려고 무지 애를 써온 사람이다.

우리 집은 서울의 강남도 강북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강동지역이다. 교육열기도 그 중간쯤 될까. 우리 같은 월급쟁이 가정에서는 ‘돈 안 들이는 교육이 최고의 재테크’라는 것이 나의 소신이었다.

나의 소신은 이번 겨울방학을 맞아 여지없이 무너졌다. 지난 가을 집에 배달되는 신문 틈에서 쏟아져 나오는 학원광고 전단에 흔들리기 시작한 나의 소신, 중학생 딸을 둔 친구의 충고에 결정타를 맞았다.

“중학교 첫 시험 등수가 3년 간다. 소신 찾다 후회 말아!” 친구의 말이 중상위권에서는 다들 열심히 공부를 하다보니 중학교 첫 시험인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석차가 졸업 때까지 거의 변동이 없더라는 얘기다. 다른 경험자들도 이구동성.

그래서 찾은 학원에서 큰아이는 먼저 실력 테스트를 했다. 그 결과 중요 과목인 수학에서 참담한 성적을 냈다. 그간 학교에서 잘하는 편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학교공부만 믿으면 된다는 나의 신념이 얼마나 부질없던지.

폭넓은 사고력을 키우고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좋은 학습법이란 거 잘 안다. 그렇게 해서 잘하는 아이도 봤다.

내 아이가 그런 아이라면 나도 좋겠다. 그렇지만 중고교 내신성적이 상급학교 진학에 반영되다 보니 ‘소신’과 ‘남들처럼’ 사이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내 아이의 ‘정체’를 모르는 것도 문제다. 초등학교 시험 폐지 이후 아이가 아주 뛰어나거나, 혹은 아주 처지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제대로 된 성적을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들은 아이에 대해 막연하게 낙관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다들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고 믿으며 중학교 첫 시험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는 심정으로 예비중학생을 둔 엄마들은 아이와 함께 학원으로, 학원으로 달려간다.

학교공부로만 충분하다면 학원 안 보낸다. 아이에게 다른 특기적성이 있다면 공부 대신 그거 시킨다! 하지만 시험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어렵게 나온다.

또 ‘반짝’할 만큼 확실한 특기적성을 가진 애가 몇이나 되나? 초등학교 내내 애가 뭘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갑자기 턱 내미는 황당한 성적표를 받아야 하는 요즘 엄마들에게 돌멩이 던질 사람 있음 나와 봐라. 우리도 소신교육을 하고 싶다!

박 경 아(서울 강동구 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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