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隱 退(은퇴)

  • 입력 2002년 12월 29일 17시 36분


隱 退(은퇴)

隱-숨을 은 退-물러날 퇴 避-피할 피

塵-먼지 진 遁-숨을 둔 歸-돌아갈 귀

‘隱退’는 現職(현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아간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냥 退職(퇴직)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숨는다’는 뜻의 ‘隱’자를 한 자 덧붙였을까? 隱退는 隱居(은거)와 退職(퇴직)의 복합어로 어떤 직책을 단순히 물러나는데(退職) 그치지 않고 숨어 지낸다(隱居)는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消極的(소극적), 避世的(피세적)인 느낌이 든다.

옛날의 退職은 지금처럼 나이가 아니라 외부의 정치적 또는 사회적인 상황에 의해 결정되었다. 따라서 일흔이 넘은 공무원이 있는가 하면 梅泉(매천) 黃玹(황현·1855∼1910) 선생처럼 젊은 나이에 관직을 팽개치고 일생을 草野(초야)에 묻혀 산 사람도 많았다. 隱退는 바로 세상일에 간여하지 않고, 또 세상과 다투지도 않으며 본성에 좇아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退職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아예 깊숙이 몸을 숨김으로서 性命(성명)을 保全(보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名利(명리)에 찌든 세상, 몸담아 봐야 뒤집어쓰는 것은 紅塵(홍진) 밖에 더 있겠는가. 자연히 물러난 다음의 과정은 숨는 것이었으니 隱居(은거)니 隱遁(은둔)이라고도 했다. 후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피해 산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隱退든 隱遁이든 세상일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일 뿐 ‘隱’의 장소, 즉 어디에 숨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명확한 규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숨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高官(고관)의 경우, 조정에 들기는 하나 마음은 딴 데 가 있어 일을 하는 둥 마는 둥 消日(소일)하는 것을 朝隱(조은)이라고 했는데 三千甲子(삼천갑자) 東方朔(동방삭)이가 그러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落鄕(낙향)하여 田園山水(전원산수)를 벗삼아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았으니 이를 野隱(야은)이라 하며 陶淵明(도연명)이가 그 대표다. 隱退의 최고 경지다.

그러나 隱退가 그리 쉬운가. 천하의 陶淵明이도 처자식 굶길 수 없어 彭澤令(팽택령)을 택하지 않았던가? 결국 歸去來辭(귀거래사) 읊으면서 다시 落鄕하지만 마음은 굴뚝같아도 막상 실행에 옮기기가 쉽지 않은 법.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그저 속세에 살면서 조용히 지내는 것이 市隱(시은)으로 晉나라 때의 劉粲(유찬)이 했던 방법이다. 나 같은 경우,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그렇다면 校隱(교은)이 아닐까.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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