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 시험문제' 냈던 경북대 정효찬 강사

  • 입력 2002년 12월 22일 17시 30분


정효찬 강사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열린 마음”이라고 말했다./대구〓이권효기자
정효찬 강사는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열린 마음”이라고 말했다./대구〓이권효기자
최근 대학 교양과목의 ‘파격적인’ 기말시험 출제로 화제를 모았던 경북대 예술대학 강사 정효찬씨(31). 그는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인사가 돼 있어 깜짝 놀랐다”며 “시험에 관한 경직된 ‘통념(通念)’을 깨뜨린 때문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그가 출제한 ‘미술의 이해’ 40문항이 한 수강생을 통해 11일부터 인터넷에 올려지자 경북대는 물론 서울지역 대학들의 홈페이지도 후끈 달아올랐다. ‘엽기적’ ‘비교육적’이라는 부정적 평가에서부터 ‘참신하다’ ‘판에 박힌 시험문제만 내는 교수들은 반성해야 한다’ 등 긍정적인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인터넷 게시판에 오른 수천건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당신이 참다운 교육자’라는 긍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수강생들도 “대충 암기해서 점수 받으면 되는 시험에 비해 훨씬 ‘교육적’이지 않느냐”며 그를 감쌌다.

“학생들에게 현대미술을 어떻게 이해시킬지 무척 고민했어요. 저도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별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미술작품을 어떤 사람은 보고 가슴이 뛴다고 하더군요. 수강생들이 한 학기 수업이 끝난 뒤 ‘미술’, 즉 ‘아름다움’이 뭘까를 한번쯤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수업의 목표였습니다.”

그는 수강생 120명을 20개조로 나눠 수업시간마다 조별로 ‘자유롭게’ 주제발표를 하도록 했다. ‘라면 끓이기’ ‘키스’ ‘고스톱’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는 친구’ ‘문신’ 등 다양한 주제가 등장했다. ‘고스톱’에 관해 발표했던 조는 고스톱을 ‘그림-동양화-문화’ 측면에서 살피기도 했다.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 태도는 ‘열린 마음’입니다. 학생들이 주제발표를 하는 동안 우리는 ‘느낌’을 나눴어요. 수업시간이 곧 ‘미술행위’였던 셈이지요.”

첫 문제로 제시한 ‘지금 시험을 치고 있는 과목은?’은 1명이 ‘미술의 오해’를 답으로 꼽았다. 그는 ‘틀린 것’으로 채점했지만 “이번 수업이 과연 미술에 대한 100% 이해였을까를 생각하면 ‘미술의 오해’가 꼭 ‘틀렸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경북대 대학원(조소전공)을 졸업하고 올해 처음 강의를 맡았다. 1학기 때는 ‘만약 신데렐라가 지금 살아있다면’을 주제로 마음껏 써보라고 주문한 적도 있다.

“만약 백남준 같은 분이 똑같은 시험문제를 출제했더라면 ‘엽기적’이라는 평가보다는 ‘역시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하는 정씨. 그는 그동안 행위예술이나 설치미술을 해보고 싶었지만 머뭇거렸는데 이번 일로 뜻밖에 ‘예술적 용기’가 생기는 것 같다고도 했다.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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