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최영배신부, 엽서 글 모은 ‘들꽃처럼…’ 출간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09분


들꽃마을 창설자 최영배 신부./사진제공 까치
들꽃마을 창설자 최영배 신부./사진제공 까치
‘어떠한 죄도 그 존재의 크기와 가치에 비하면 한 점의 먼지와 같습니다.’

‘세상이 바뀌어서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어서 세상이 행복한 것입니다.’

160명의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들꽃마을’(경북 고령군 우곡면)의 창설자인 최영배 신부(47)는 매달 10일경 2만여명에게 이같이 잔잔한 단상이 담긴 엽서를 보낸다.

엽서 발송은 10년 전 시작됐다. ‘들꽃마을’ 후원자 300여명에게 조그만 감사의 표시로 손수 연필로 써서 보냈다. 하지만 그의 글이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후원자 외에도 그 엽서를 받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했다. 1000장, 2000장으로 불어나던 엽서는 1만장을 넘어섰고 어느덧 육필 엽서는 인쇄 엽서로 바뀌었다.

그의 글이 의외로 인기를 모으면서 한 방송사 관계자의 주선으로 엽서 글을 묶은 ‘들꽃처럼 살으리라’(까치)는 책까지 최근 펴내게 됐다.

“평범한 글인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그만큼 세상이 각박하다는 뜻일까요. 제 글을 보고 힘을 얻었다는 반응이 올 때 가장 기쁩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가톨릭신학대학을 졸업한 그는 33세의 나이에 늦깎이 신부가 되면서 성직자 생활을 시작했다. 90년 겨울 길바닥에 쓰러진 병든 노인을 데려와 사제관에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어떤 신부가 부랑자 노인을 정성껏 모신다더라’는 소문이 나면서 사제관엔 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 수가 10여명으로 늘어나자 그는 낙동강변에 ‘들꽃마을’을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심했다. 부랑자들이 모이면 마을 분위기가 흐려진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들을 맞아준 것은 인근에 모여 살던 10여명의 나환자들이었다.

“주민들의 편견이 심했어요. 요즘도 상황이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어딘가 제2의 들꽃마을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들꽃마을’은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8, 9명을 묶어 한 집에 함께 산다. 한 달에 생활비 60여만원을 주고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다. 최 신부와 그를 돕는 15명 정도의 자원봉사자는 그들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고 어려운 일만 도와준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일방적 도움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비록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 되면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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