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필요한 동연이 사랑으로 부축해주세요"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18분


통합교육 지지론자인 김혜미씨가 동연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이종승 기자
통합교육 지지론자인 김혜미씨가 동연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이종승 기자
서울 고은초등학교 1학년 동연이 아빠는 대학교수다. 엄마는 방송국 성우이고 언니는 같은 학교 6학년. 동연이는 학교에서 장애아와 비장애아가 함께 어울리는 이른바 ‘통합교육’을 받고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동연이 엄마 김혜미씨(37)에게 소원을 물었다. “모든 장애아 엄마의 소원은 한가지, 아이 보다 하루 더 사는 것입니다. 자식에게는 보살펴 줄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다른 누구보다도 애 낳기를 원하지만 또 장애아가 나올까봐 선뜻 실행에 옮기지도 못합니다.”

인터뷰가 30분을 넘기자 곁에 있던 동연이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김씨가 “KFC에 갈게”하고 달래자 동연이는 얼른 기자에게 “안녕히 계세요”하고 어눌하지만 밝게 말했다. 김씨는 ‘빨리 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는데 동연이가 이같이 잔머리를 쓰는 게 예쁘게 보였다.

# 동연이 & 동연이 엄마

동연이가 영화 ‘울랄라 시스터즈’의 포스터를 보고 나름대로 생각해 그린 것.

“전 어디서나 당당해요. 동연이 네살 때 목욕탕에 갔다가 동연이가 ‘어’하고 소리 지른 적이 있어요. 옆 아주머니가 ‘요즘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버릇없이 키운다’고 하기에 ‘제가 어떤 엄마인 줄 알고 그러느냐’고 옷벗고 싸운 적이 있어요. 그 다음부터 동연이가 이해를 받아야 할 상황일 때는 얘기도 하고요.”

동연이의 자폐증을 안 것은 두돌 지날 무렵.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임신 8개월 때 날아다니는 개미에 물려 온몸에 독이 퍼진 적이 있는데 이때 동연이의 뇌에 손상이 갔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특수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김씨가 방송국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그것도 통합교육을 하는 일반학교에 입학하자 김씨의 손이 더 많이 갔다. 이 학교에는 1학년 반마다 장애아가 한 명씩 배정됐는데 김씨는 1학기 때는 거의 아이와 함께 수업을 받았다. 현재는 장애아 부모들이 자비로 아이의 수업을 도와주는 도우미를 두고 있다.

고은초등 통합교육 학부모회 회장인 김씨는 “장애아 엄마들은 아빠 수입으로는 아이 치료비를 댈 수 없어 오히려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며 “통합교육 도우미제라도 도입돼 장애아 부모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이가 특수학교에 다니면 엄마나 아이나 당장 편할지 모르지요. 그러나 아이는 자신이 어울려 살 또래집단이나 사회와의 접합점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장애아 엄마들은 아이가 공부 잘하라고 일반학교에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학교나 사회에서 정상아들과 ‘통합’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 분리교육 vs 통합교육

“일반학교에 다닌다고 저절로 통합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 이웃과 통합돼야 하고 골목, 지역사회에서 통합돼야 합니다. 어느 장애건 도움이나 간섭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지요.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혼자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지요.”

정신지체 유치∼고등과정 공립특수학교인 서울 경운학교 김효진 교장(57)은 그래서 올해 ‘전교생 라면 끓여먹기’를 교육목표로 삼았다. 처음에는 학부모들이 반대했다. 아이들이 함부로 가스불을 켜면 어떻게 하느냐고. 김 교장은 위험할수록 더욱 가르쳐야 한다고 설득했고 이제 받아만 먹던 아이들이 직접 끓여 먹게 됐다.

“전교생이 시계를 차도록 했어요. 낮 12시 되면 점심시간, 오후 3시 되면 하교시간, 6시 되면 저녁시간임을 알게하면 그 사이 1시 2시만 가르치면 되잖아요. 중등부에서는 청소경연대회도 열어요. 취업을 하더라도 정리정돈은 기본이니까. 여자아이들은 화장을 하도록 가르칩니다.외모에 핸디캡이 있기에 더욱 가꿔야지요. 우리처럼 전교생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줄 아는 학교도 없을 걸요?”

올 3월 개교한 이 학교의 학생 수는 13학급 90명. 특수학교지만 효과적인 통합교육을 추구하고 있다. 반별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1박2일 부산 갔다 오기, 직접 밥 사서 먹기, 햄버거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기…. 각 반에 액정 컴퓨터와 프린터, 냉장고, 평면 TV와 DVD 플레이어가 갖춰져 있지만 시설보다는 교육의 질로 세계 최고가 돼야 한다는 것이 김 교장의 신념이다.

“‘우리아이들’이 이웃 교동초교 운동장을 씁니다. 그러나 그곳 교실에는 들어가지 않아요. 그쪽 아이들이 우리 학교에 와서 배워가야지요. 다른 학교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우리 학교에 와 함께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해요. 그것이 진정한 통합교육이 아닐까요?”

청각장애 아들을 대학원 교육까지 시켰다는 김 교장의 자신감과 단단함이 느껴졌다.

# 장애가 있으나 없으나 또래에게서 자극받는다

통합교육은 세계적 추세. 서울 서부교육청 관내 51개 초등학교 중 34개교가 특수학급을 운영한다. 70% 가까이 통합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셈.

이들 학교에서 장애아는 각 반에 소속돼 있으면서 일부 수업만 특수학급에서 받는다. 당장 우리 아이 반에 장애아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 일선 교사들은 “장애아가 있을 경우 학급인원 수를 줄여주든지 보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합교육이 장애아뿐 아니라 정상아들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장애아를 보호하고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른스러워 집니다. 저학년들이 급식시간에 수저를 놓아주든지 공부시간에도 ‘여기 앉아’하고 타이르는 것을 보면 대견해요. 일부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방해를 받고 선생님을 빼앗긴다며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만. 비장애아의 엄마들도 자녀들이 장애아를 돕도록 교육하는 것 같아요.”(김수정·고은초등 2학년 담임교사)

“막상 짝이 장애아라면 꺼리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러나 자녀들에게 사람의 성격이 다르듯 능력도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어요. 아이가 장애인을 처음에는 무서워하지만 이해하게 되면 오히려 배려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자신과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그 사람을 포용하고 자신은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며 또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교육이 아닐까요?” (박영숙·서대문장애인복지관 재활사업부장)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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