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 교수 "美, 한국전때 중국군 참전 미리 알았었다"

  • 입력 2002년 12월 6일 17시 49분


박명림 교수
박명림 교수
1990년대 중반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로 브루스 커밍스, 와다 하루키 등 세계적인 학자들에게 필적하는 업적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던 소장학자 박명림(朴明林·39·연세대 국제대학원·정치학·사진) 교수가 6년 만에 두번째 저서를 내놨다.

새 저서인 ‘한국 1950:전쟁과 평화’(나남출판)는 1996년 발간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의 제2부. 이번 저서에서 그가 초점을 맞춘 것은 전쟁 발발부터 1·4후퇴까지 6개월간의 구체적인 정황이다. 이는 한국전쟁과 관련해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의 역할에 대한 평가가 냉전적 시각에 의해 좌우돼 온 점을 비판하며 사실에 기초한 보편적 기준을 적용하려 애써 온 그의 입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이 저서는 한국전쟁 3부작 중 제2부이지만 2004년 완간 예정인 3부작 전체의 구조와 내용을 보여주는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 동안의 한국전쟁 연구가 관련 국가들과 정치지도자의 정책결정 및 그 발발 요인에 치중해 전쟁의 사실적 내용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 온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서 있다. 그는 이번 저서에서 방대한 자료에 대한 엄밀한 검토 작업을 통해 실질적인 전쟁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인 남북한의 당시 현실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1994년부터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당시 남북한의 실태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을 수집해 왔다.

이 때문에 이 저서에는 새로이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기존의 통설을 반박하는 주장들이 적지 않다.

▽미국은 중국군 참전을 미리 알고 있었다〓미국 합동참모위원회의 문서에 의하면 미국은 전쟁 발발 초기인 7월초에 이미 중국의 참전 조짐을 알고 있었다. 다만 한반도의 통일을 조급하게 추진하면서 중국이 참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작전계획을 마련했을 뿐이다.

▽북한의 토지개혁은 남한과 다를 바 없었다〓북한이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의 토지분배를 남한 정부의 것과 비교한 결과 남북한의 토지개혁이 큰 차이가 없었다. 이는 한국전쟁이 북한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주장에 대한 주요한 반론이 된다.

▽미군 폭격에 의한 사망이 예상외로 많았다〓박 교수는 공보처가 발표한 국방부 공식기록을 인용하며 “1950년 9월28일 현재 총 1만7127명의 서울 사망자 중 인민군에 의한 피살이 1721명인 데 비해 미군의 폭격에 의한 사망은 4250명에 달해 미군에 의한 피해자가 더 많았다”고 밝혔다.

▽황해도 신천지역 학살은 미군이나 국군이 한 것이 아니다〓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천 학살은 미군이나 국군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좌우익 갈등의 결과였다. 이는 북한측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휴전협상은 냉전사의 전환점이었다〓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이 관철시키고자 했던 ‘무조건 항복’ 정책이 중국에 의해 저지됨으로써 휴전협상이 시작됐고 이는 국제정치사에서 탈냉전의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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