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개혁 전도사' 케른 독일 괴팅겐大 총장

  • 입력 2002년 11월 27일 18시 38분


케른 총장은 “대학이 문제해결을 위한 자율권을 갖고 정부가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올바른 대학 개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강병기기자
케른 총장은 “대학이 문제해결을 위한 자율권을 갖고 정부가 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올바른 대학 개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강병기기자
《‘독일 대학개혁의 전도사’로 불리는 호르스트 케른 독일 괴팅겐대 총장(62)이 한국동문회 초청으로 내한, 최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독일 대학개혁의 현황과 방향’을 주제로 세미나를 가진 뒤 돌아갔다. 산업 및 조직사회학자로서 명성이 높은 그는 1998년 당시 구조개혁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던 괴팅겐대의 총장으로 취임, ‘감독받는 자율권(Kontrollierte Autonomie)’의 개념을 주창하면서 조직의 효율성을 크게 높여 대학개혁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

-바람직한 대학개혁모델을 수립한 당시 독일 대학들이 어떤 요구에 부닥쳤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일 대학은 중세시대 이후 외부의 영향에 덜 민감한 독자적인 영역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먼저 학문간 연구비용의 격차가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광범위한 조사 연구를 필요로 하는 학과는 그렇지 않은 학과에 비해 몇배, 몇십배의 예산을 필요로 해서 기존 방식의 예산분배는 소용이 없게 되었지요. 설상가상으로 교육 예산이 크게 축소되었습니다.”

-총장님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대학개혁 모델은 ‘감독받는 자율권’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대학은 그 역사적 근원으로 볼 때 ‘연구자 공화국’의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자 공화국’은 상당히 현실도피적이며 평화로운 시대의 모델로서 개혁이 필요할 때 더디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정부가 대학을 통제하는 ‘규제받는 대학’의 모델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대학이란 적어도 대기업 이상의 복잡한 시스템이며, 그래서 관료주의 방식으로 관리하기에 매우 부적합합니다. 그래서 나온 제3의 모델이 이른바 ‘시장모델’이죠. 그러나 학문은 대부분 교환가치로 당장 혹은 직접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시스템은 대학과 졸업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내가 제시한 모델이 ‘감독받는 자율권’ 모델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먼저 감독의 주체와 객체, 이를테면 정부와 대학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목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에 합의해야 합니다. 그 뒤 대학은 이 목표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 완전한 자율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정부는 달성된 목표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그 도달치에 따라 대학에 더 많거나 적은 자율권과 예산을 제공토록 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우 독일과 달리 거의 대부분의 대학이 사립 체제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자율권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학생 선발방식과 등록금 책정 등 기본적인 사항마저도 교육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하는 형태입니다. 얼마 전 한 대통령후보는 교육부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의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해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만, 교육부의 기능을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특성이나 장점이 없는 ‘그만그만한’ 대학들만을 육성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과 학과를 육성하는 것은 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국 대학의 경우 99년 커다란 개혁의 바람에 부작치게 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주도한 ‘두뇌한국(BK)21’ 사업은 고급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을 선별해 집중육성하고 대학은 지역별로 특화한다는 개념 아래 추진됐습니다만, 예산의 효율적 사용은 차치하고 ‘시장논리에 입각해 인문학을 경시한다’ ‘교수들의 잡무를 늘리고 연구할 시간을 빼앗는다’는 등의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선별화 집중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문세계는 서로 유기체적으로 얽혀 있어, 어떤 분야를 등한시할 경우 전체 학문의 수준이 저하되게 되고, 결과적으로 육성하려는 과목마저도 악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 어떤 학문적 과제를 해결하려 할 때는, 그것이 실패할 경우를 염두에 둔 대안적 방법도 마련해두어야 합니다. 이 섬세하고도 어려운 작업을 정부나 감독관청이 모두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대학 서열화 문제가 심각한 한국에서는 전체적으로 ‘수준이 고른’ 독일 대학들이 일종의 바람직한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차별화는 수준이 낮은 학교를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라 수준이 높은 분야를 끌어올리는 쪽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것은 학교의 명망이나 동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차별화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수준을 높은 쪽으로 차별화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케른 총장 약력

△1970 괴팅겐대 박사

△1971 하노버 기술대 교수

△1977 괴팅겐대 사회학과 교수

△1979 괴팅겐대 사회학과장

△1988 미국 MIT 방문교수

△1994 일본 간사이대 방문교수

△1995 괴팅겐대 부총장

△1998 괴팅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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