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까기 인형' 발레리노 이원국씨 "왕자역 체질인가봐요"

  • 입력 2002년 11월 25일 18시 30분


이원국(왼쪽)씨는 호두까기 인형에서 10년째 왕자역을 맡고 있다. 오른쪽은 여주인공역 윤혜진씨./박영대기자
이원국(왼쪽)씨는 호두까기 인형에서 10년째 왕자역을 맡고 있다. 오른쪽은 여주인공역 윤혜진씨./박영대기자
매년 연말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발레작품 ‘호두까기인형’.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크리스마스 전후로 무대에 올리는 이 공연은 매년 표가 매진되는 인기 레퍼토리.

국내 최고의 발레리노인 이원국(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은 1993년 ‘호두까기인형’에서 처음 왕자 역을 맡은 이후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두루 거치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10년째 왕자를 맡고 있다. “매년 더 나은 왕자가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표가 더 팔려나간 것만은 확실하다”며 농담을 던지는 그를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났다.

-‘왕자 10년’의 소감부터….

“운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무용수는 무대 생명이 길지 않은 데다 한 작품이 매년 공연되는 일도 쉽지 않으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이다 보니 10년 동안 이 작품을 끝으로 은퇴하거나 발레를 그만두는 단원들이 많다. 언젠간 나도 ‘호두까기인형’을 끝으로 떠나겠지 하는 생각도 한다.”

-‘크리스마스 발레’를 하다 보니 10년간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겠다.

“관객은 눈치채지 못해도 우리끼리 무대에서 크리스마스를 자축하기도 한다. 1막 파티 장면에서 보통 때는 빈 잔을 들고 춤을 추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공연 때는 술잔에 진짜 와인을 채우고 무대 위에서 건배했던 적도 있다.”

-기억에 남는 호두까기인형은….

“아무래도 93년 첫 공연이다.”

‘호두까기인형’은 원전인 프티파-이바노프 버전 외에도 유명한 개정판만 12개가 넘는다. 그가 춤춘 버전은 5개. 그는 “국립발레단이 지난해부터 채택한 유리 그리가로비치 버전이 웅장하고 에너지가 넘쳐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와 호흡을 맞춘 여주인공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부터 김주원, 김지영까지 모두 8명. 올해는 지난해에 이어 신인 윤혜진과 호흡을 맞추지만 발레단측은 ‘왕자 10년’임을 배려해 개막 특별 공연에선 스타 발레리나 김주원을 파트너로 정해줬다.

발레단 내에서 그의 호칭은 ‘선생님’. 막내단원과의 나이 차이가 15세나 되는 데다 그가 가르쳤던 단원도 있기 때문. 한 직원이 귀띔해준 그의 별명은 ‘황태자’였다.

오랫동안 주역만 맡은 탓에 붙은 별명이지만 소탈하고 농담도 잘하는 그에게 ‘왕자병’은 없어 보였다. 상대의 숨소리 하나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긴장과 피로는 퇴근할 때 혼자 ‘골목길’(물론, 양동근이 아닌 김현식의 ‘골목길’이다)을 부르며 날려버린다.

-결혼하면 남자도 몸매가 변하던데…. (그는 올 6월 11세 연하의 장윤미씨와 결혼했다.)

“몸매는 변함 없다. 하지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훨씬 어른스러워졌다. 내년 1월이면 아빠가 되는데 삶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올해 나이 서른다섯. 일반적으로 남성 무용수의 정년은 30대 후반. 그도 서서히 내리막길을 생각해야 할 나이다.

그는 “예전 같으면 주역으로 은퇴하고 싶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듯 그는 절대로 코르드(군무)를 할 수 없다. 특별히 다른 몸짓을 하지 않아도 단연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는 천부적으로 ‘왕자’인 걸까. 빨간색 왕자복과 타이즈에서 가죽 바지에 가죽 잠바로 갈아입고 나타난 그의 다부진 몸매를 보면서, 어쩌면 ‘권불십년’이라는 말은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21일부터 29일까지. 02-780-6400.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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