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법률정보 사세요” 영업나선 변호사들

  • 입력 2002년 11월 7일 16시 54분


법률정보 세일즈에 몰두하고 있는 변호사들. 이해완 사장, 안기순 이사, 조우성 이사(왼쪽부터)
법률정보 세일즈에 몰두하고 있는 변호사들. 이해완 사장, 안기순 이사, 조우성 이사(왼쪽부터)
“변호사님들이 요즘 많이 힘드신가 봐요? 이렇게 영업에 직접 나서시는 걸 보니.”

“네, 맞습니다. 그러니까 좀 도와 주세요. 이거 한번 써 보세요. 진짜 좋습니다.”

㈜로앤비의 이해완 사장(40)은 기업체의 대리급 직원을 만나 이런 대화를 자주 나눈다. 사장이지만 영업에 직접 나서고 있다. 그가 파는 것은 법률정보를 제공하는 솔루션. 아니면 법률 콘텐츠가 가득한 홈페이지를 이용할 유료 아이디다.

2000년까지만 해도 그는 서울고법 판사였다. 법전과 소송서류만 들여다보던 이 판사는 2000년 말 사업가로 변신했다.

●“재판보다 훨씬 어려운 게 사업”

이 사장은 인정받던 정보화 법관이었다. 인터넷이 그다지 확산되지 않았던 1996년 당시 서울지법 판사였던 그는 법조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법률정보 홈페이지 ‘솔’을 만들어 운영하며 네티즌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 덕분이었다. 2000년 말 법무법인 태평양이 사이버 로펌을 만들기 위해 적임자를 물색하면서 이해완 서울고등법원 판사에게 주목했다.

“사업을 하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제안을 받고는 황당했죠. 그런데 자꾸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일인 데다가 잘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법률의 대중화를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한 달간 고민하다가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로서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부장판사를 거치는 게 훨씬 나았지만 이번 또한 기회였다.

“처음에는 법률정보 제공이나 콘텐츠 제작만 잘 하면 사업이 될 줄 알았죠. 회사를 꾸릴 자금을 제가 모아야 한다는 것은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태평양과 소속 변호사들이 자본금 10억원을 댔지만 회사를 꾸려가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삼일 회계법인의 자회사로 인터넷을 통해 회계 콘텐츠를 제공하는 삼일인포마인과 접촉했다. 법률과 회계가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므로 시너지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

처음에는 기획실장을, 다음에는 사장을, 그 다음에는 회장을 만나 기업설명회를 가졌고, 될 듯 안될 듯한 분위기 속에서 초조한 4개월이 흘렀다. 결국 지난해 말 삼일인포마인은 3억4000만원을 로앤비에 투자했다.

“재판하는 것보다 사업이 훨씬 어렵더군요. 주주, 고객들을 대상으로 세일즈해야 하고 직원들에게는 회사 비전을 보여줘야 했어요. 어떨 때는 내가 잘 하고 있나 고민하느라 한동안 밤잠을 설치기도 했고요.”

기독교 신자인 그를 붙들어준 건 ‘소명의식’이라고 했다.

●손수 자금 모으고 프로그램 제작

이 사장과 함께 로앤비를 꾸려 가는 경영진 두 사람도 모두 변호사 자격증 소유자다. 조우성 마케팅 기획이사(33)는 태평양에서 4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으며 안기순 콘텐츠 기획이사(32)는 ‘프로그래머 변호사’다.

조 이사는 로앤비의 교육사업과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살림꾼. 태평양에 사이버 로펌을 제안한 기획자이기도 하다.

“‘한글과컴퓨터’ ‘메디슨’ 등 1세대 벤처기업과 일을 하면서 사업가가 참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느꼈어요.” 변호사는 사업을 주체적으로 끌어가지 못하고 ‘예’ ‘아니요’ 답변만 해주는 역할이라 한계를 느꼈죠.”

로펌에서는 보통 5년 경력의 변호사에게 유학의 기회를 준다. 개인의 발전도 도모하고 안식년처럼 쉬다 온 뒤 더 능력을 발휘하며 일하라는 뜻. 그 기회를 앞두고 조 변호사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내는 싫어해요. 로펌에서 주는 월급이 훨씬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2년 남짓 사업을 해보니 요즘 시기가 내 인생에는 남는 장사 같아요. 비즈니스의 세계를 이처럼 체험하면 훨씬 좋은 비즈니스 전문 변호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 이사는 변호사 경력은 단 하루도 없다. 고3 때 공부하기 싫으면 수학책을 꺼내 문제를 풀곤 하던 그는 사법연수원 시보 시절 “시간이 남아서” 프로그래밍을 독학했다. 이때 만든 판례검색 프로그램을 통신망에 올렸더니 엄청난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은 군 법무관 3년을 거치면서도 식지 않았다. 그는 말년 차에 태평양에 지원했는데 마침 사이버 로펌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고는 적극적으로 합류했다. 그는 로앤비의 프로그램과 솔루션의 기반을 닦았으며 지금도 대여섯 명의 프로그래머와 웹디자이너를 데리고 프로그램 업그레이드에 여념이 없다.

사실 인터넷에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모델은 인터넷 붐을 타고 한동안 유행했다. 그러나 시장이 커지기엔 걸림돌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법률 상담을 해주는 사업 모델은 확실한 유료 수익원이긴 했지만 법률적 다툼의 소지가 있기 때문. ‘사이버 상담’을 해주고 수임료를 받을 경우 ‘변호사가 변호사 아닌 자(이 경우 법인)와 함께 수익을 취할 수 없다’는 변호사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대한변협은 사이버 상담 서비스에 대해 경고를 계속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사이트처럼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담 서비스를 주된 사업모델 중 하나로 생각했는데 곧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가 고민이 되더군요.”(이 사장)

●“사업 본궤도 오르면 각자 다른길”

지난해 2월 사이트를 출범시켜 놓고도 이 같은 고민은 계속됐다. 사업이 계속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물론이다. 네티즌이 대상이 아니라면 판사 변호사 법학자 등 법조인을 고객으로 삼아야 했다. 거기다 대기업의 법무팀이나 법무팀이 없는 중소기업도 타깃이었다.

로앤비는 고심 끝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웨스트로’처럼 직접적인 상담이 아니라 ‘법률 정보’ 제공 서비스에 무게중심을 두는 사업모델을 만들었다.

우선 법령, 판례 등을 가공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자체 생산한 콘텐츠뿐만 아니라 법률신문과 제휴해 얻은 논문 2000여건, 일본의 법령판매 마스터 서비스 회사와 연결해 얻은 일본의 판례 등 로앤비 사이트가 갖춘 콘텐츠는 방대하다. 삼성생명 SK생명 등 보험회사의 법무 관련 부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이트의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월 5만5000원의 이용료가 싸지는 않지만 교통사고 관련 판례나 법률규정을 찾아보기에는 그만이기 때문이다.

콘텐츠 검색 솔루션은 국회 대검찰청 연세대 서강대 숙명여대 경기대 선문대 등의 인트라넷에 들어가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도 계약을 진행 중이다. 내부 인트라넷에 검색 솔루션을 넣을 경우 교수, 학생, 직원 모두가 언제든 필요한 법률 검색을 쉽게 할 수 있다. 특히 법대 교수와 고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에게는 유용한 자료다.

사이트를 찾은 일반인을 위해 상담 사례를 보여주고, 필요할 경우 변호사와 상담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수수료를 떼지 않고 고객과 해당 변호사가 알아서 상담을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체 법무 담당 임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사업도 진행한다. 실무를 다뤄 본 조우성 이사가 체험을 바탕으로 기업 법무를 설명하기 때문에 호응도가 높다.

“사업 시작할 때부터 변호사라는 배경이 있으니 조금만 어려우면 쉽게 돌아서지 않겠느냐고들 우려했죠.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충분히 어려운 시간을 견뎌냈고, 앞으로도 로앤비가 완전히 자리잡을 때까지는 뒤돌아보지 않고 사업에만 몰두할 생각입니다. 법조인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사업이 저절로 굴러갈 때쯤이면 전문 경영인이 맡을 수 있을 거고 우리도 각자 다른 길을 가겠죠. 하지만 그때까지는 오로지 한 길입니다.”

로앤비의 올해 예상 매출은 약 6억원. 세 변호사는 내년에는 매출이 두 배로 늘어 ‘순이익 원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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