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장난감 “비싼만큼 제값”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6시 50분


어린이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브리오’의 기차놀이 세트를 갖고 놀고 있다./권주훈기자
어린이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브리오’의 기차놀이 세트를 갖고 놀고 있다./권주훈기자
“나, 이 로봇 살래.”“집에 있는 거랑 똑같잖아.”“집에 있는 건 총이 없단 말이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7층 장난감 코너. 만 세 살인 준우와 엄마의 실랑이가 한창이다. 준우는 로봇을 고집하지만 우수현씨(30)의 관심은 점원이 추천하는 장난감에 쏠려 있다.

“이 장난감은 아이들 지능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기찻길을 연결해 보고 터널도 이곳에 뒀다 저곳으로 옮겼다 할 수도 있고….”

점원이 설명하는 장난감은 스웨덴 브랜드인 ‘브리오’의 기차놀이 세트. 직선이나 곡선 모양으로 조각 나 있는 기찻길을 아이가 상상하는대로 연결해 완성시키도록 디자인된 장난감이다. 기찻길 중간에 다리를 설치하거나 길 옆으로 건물을 놓을 수도 있다.

요즘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나 완구점은 ‘브리오’같은 수입 장난감들이 진열장을 채워가고 있다. 롯데백화점 유아용품 바이어 민성욱씨는 “외국 생활을 해본 사람이 늘면서 외국에서 아이들에게 사줬던 장난감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사려는 부모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런 주변 사람들의 소개로 수입 장난감을 찾는 부모도 늘고 있다.

‘치코’의 토마토 집(왼쪽)과 ‘브리오’의 캥거루 가족 인형.

부모들이 비슷한 국산 장난감에 비해 3∼4배 비싼 외국산 장난감, 특히 유럽산 장난감을 굳이 찾는 것은 ‘외제’라거나 ‘명품’이라는 꼬리표에 이끌린 것만은 아니다. 유럽에도 값싸게 만든 중국산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대개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유럽의 장난감 회사를 신뢰한다. 1884년 설립된 ‘브리오’처럼 100년 이상된 회사도 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장난감에 대한 연구도 깊다. 바로 이같이 유럽산 장난감들이 신체나 지능 발달을 돕는 교육적 요소가 많다는 점이 부모들이 찾는 첫 번째 이유.

스위스제인 ‘큐보로’는 블록 쌓기에 퍼즐의 원리를 도입한 제품. 홈과 구멍이 나 있는 큐브(정육면체)를 원하는 모양으로 조립한다. 단 큐브를 모두 쌓아올린 다음 맨 위쪽 구멍으로 구슬을 넣어 아래쪽 마지막 구멍으로 통과해 나오도록 머리를 써가면서 조립해야 한다. 형제가 있다면 누가 빨리 정확하게 조립하는지 경기를 할 수도 있다.

또 부모들이 유럽산 장난감을 선호하는 이유 중 이들 장난감이 나무 같은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하거나 입에 닿아도 해가 없는 무독성 페인트를 칠하는 등 아이들의 안전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는 믿음도 들어간다. 요즘 대부분의 국산 장난감도 무독성 페인트를 사용하지만 국산 장난감에 대한 부모들의 불신은 뿌리 깊다.

세 살짜리 아들에게 ‘브리오’ 기차놀이 장난감을 사준 차승은씨(31)는 “선진 유럽의 안전기준을 통과한 제품이므로 안전성에서 일단 믿을 만하다”고 말했다. 또 특정 나이대에 갖고 놀다 버리는 게 아니라 계속 피스(조각)를 추가하면서 나이에 맞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것.

서울 현대백화점 신촌점 IQ박스 코너 매니저 김지숙씨는 “단골 중 초등학생 3형제를 둔 주부가 있다”며 “첫째가 동생들과 ‘브리오’세트를 갖고 놀면서 필요한 피스를 계속 추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독일의 ‘로렌즈’는 유럽산 너도밤나무와 단풍나무를 엄선해 제품을 만든다. 크고 작은 구슬을 꿰면서 집중력을 키우는 ‘나무 구슬꿰기’, 나무로 만든 망치와 못 등 목공도구를 갖고 놀면서 근육을 발달시키도록 고안된 ‘목공놀이’ 등이 있다. 프랑스 브랜드 ‘빌락’은 아기염소 무당벌레 고슴도치 등 동물 모양의 장난감이 주를 이룬다. 환경친화적 컨셉트에 중점을 뒀다. 장인들이 직접 손으로 만드는 목재 공예품이다.

장난감 박물관이 곳곳에 있을 정도로 장난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네덜란드에선 ‘앰비 토이즈’가 대표적인 브랜드. ‘앰비 토이즈’는 아이들의 시각과 청각발달에 초점을 맞췄다. 선명한 색깔을 주로 사용하며 장난감별로 각기 다른 소리를 내도록 설계됐다.

이 밖에 블록완구와 프라모델(플라스틱 조립모형)의 중간형태인 독일의 ‘플레이 모빌’ 역시 점차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반조립 상태여서 아이가 ‘목장’‘인형의 집’ ‘건설현장’ ‘우주선’을 직접 꾸며볼 수 있다.

이탈리아의 ‘치코’는 자체 육아연구소를 통해 나온 인체공학적 제품이면서 지능발달 완구라는 점을 내세운다.

유럽산 장난감은 주요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와 전문완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매장이 넓지 않은 경우 모든 브랜드를 다 갖추고 있지는 않다.

백화점보다 공간 제약을 받지 않는 인터넷 수입 장난감 사이트에 더 많은 유럽산 장난감 제품이 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 유럽 장난감 뜨는 이유

유럽산 장난감의 인기는 최근 불고 있는 교육용 완구(교구)붐과 무관하지 않다. 유아교육 전문가 김효정씨는 “요즘 젊은 엄마들이 글자를 가르치는 교재보다 가지고 놀면서 인지를 발달시키는 교구에 관심이 많다”며 “이와 관련해 자연과 교감을 강조하는 독일식 유아교육이 뜨고 있다”고 설명했다.

90년 전 독일에서 발도로프 학교를 처음 세운 루돌프 슈타이너는 아이의 나이에 따라 △0∼7세 신진대사/의지/손과 발 시스템 △7∼14세 심장/폐/중앙시스템 △14∼21세 두뇌/신경시스템이 우세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자기의 움직임에만 만족하지 않고 상상놀이 안에서 의도적인 행동을 하는 시기가 2∼3세라는 것.

미국에서 발도로프 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는 라히마 볼드윈 댄시는 “자유로운 상상놀이에서 대상을 다루는 일이 비록 공상적일지라도 이것은 나중에 읽기 쓰기 산수로 곧바로 연결된다”며 “3∼6세 시기는 일생 동안 창조성의 기본이 되는 토대를 제공하므로 이것을 과소평가하거나 단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창조적 놀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장난감이다.

그는 최근 국내에 번역된 저서 ‘당신은 당신 아이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정인출판사)에서 “아이에게는 장난감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장난감 만드는 회사가 아이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난감에 대한 그의 생각은 독특하다. △단순하고 원형적인 장난감일수록 아이의 상상을 위한 여지와 가능성을 많이 남겨 놓는다. 바비 같은 인형은 아이의 상상력을 위한 공간을 남겨 놓지 않을 뿐더러 그 인형처럼 디자인된 옷을 입는 일에 탐닉하게 한다 △침실이나 놀이방에서 아이의 상상놀이에 사용되지 않거나 전혀 갖고 놀지 않는 것을 조금씩 솎아낸다 △ 장난감이 각자 ‘집’을 갖도록 하면 아이가 정돈하는 습관을 갖게 된다 △ 그릇 합판조각 나무 그루터기 등 어른이 쓰는 물건을 아이들 장난감으로 삼는다 △ 시간을 내 직접 장난감을 만든다 등. 장난감을 사기 전에 참고할 만하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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