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동양의 禪 한자리에…韓·中·日선사-신도 5000명 모여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35분


행사가 시작되자 굵은 빗줄기가 가랑비로 바뀌었다. 차일을 쳐 놓은 대웅전 앞마당은 새벽녘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인파로 북적였다.

해운대 해수욕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장산자락에 위치한 해운정사(부산시 해운대구 우1동). 20일 이 참선도량에서는 ‘국제 무차선 법회’가 열려 조계종 원로 중진 스님을 비롯한 스님 신도들 5000여명이 모였다. 무차법회(無遮法會)란 고승들을 모시고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리를 배우는 행사.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어떤 차별이나 질문도 막지 않는다’(無遮)는 뜻에서 유래했다. 인도에서 시작됐으며 국내에서는 1912년 방한암(方漢巖) 선사가 열었던 건봉사(乾鳳寺) 무차법회 이후 단절됐다. 1998년과 2000년 서옹 스님이 전남 백양사에서 이 법회를 다시 열면서 전통의 토론법회를 1세기만에 복원했다 해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21세기 선(禪)으로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기치를 내건 이번 행사는 한, 중, 일 고승들이 함께 모인 국제 행사라는 점이 특징. 한국의 서옹(西翁)·진제(眞際), 중국의 정혜(淨慧), 일본의 종현(宗玄)스님 등 동북아 대표 법사(法師) 4명이 초빙됐다.

서옹스님(90·백양사 방장)은 동화사·백양사·봉암사 조실을 거쳐 1974∼79년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역임했다. 진제 스님(71·동화사 조실)은 경허-혜월-운봉-향곡 선사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 선불교의 대표적인 법맥을 계승하고 있다. 중국의 정혜 스님(69·조주백림선사 주지)은 중국 불교협회 부의장으로 불교 부흥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의 종현 스님(54·후쿠오카 숭복사 조실)은 일본 임제종 최대 계파인 묘심사파(妙心寺派) 법사자(法嗣者)로 인가받은 인물이다.

법회는 오전 10시에 시작돼 네 고승이 차례로 법문을 하고 청중의 질문에 답하는 법거량(法擧量)으로 이어졌다.

-어떠한 것이 진리입니까?

“만리에 백골이 즐비함이로다.”

-어떠한 것이 진리입니까’

“대지의 산과 물이로다.”

-지금까지 하신 말씀의 소리는 어디서 왔습니까?

“간 데가 없는데 온 데가 있느냐”

진제 스님은 법문을 통해 “이원적 대립개념을 지양하는 선사상이야말로 갈등과 분열을 극복할 수 있는 화해와 융합의 대안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서옹스님은 “동양의 조사선(祖師禪)은 인간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 본래 생사가 없고 죄악도 없는 본래 면목 그 자리를 참사람이라고 했다. 이 참사람주의로 멸망하게 된 인류를 구제해 새로운 세계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정혜 스님은 “바깥의 평화는 마음의 평화를 전제로 하며 마음의 평화는 지금 당장의 한 생각을 잘 잡아쥐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종현스님은 “오늘 법회는 누구 한사람이라도 남기지 않고 모든 사람이 부처님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깨닫게 해 주는 대법회”라며 “극락정토는 지금 이 장소에 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웃는 얼굴로, 부드러운 말을 쓰고 서로 손을 맞잡으면 우리들이 바로 부처님과 똑같은 청정법신”이라고 말했다.

부산〓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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